site
stats
에디션 선택 통합홈 English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DC 애틀랜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한국기독일보
X
뉴스 기독교 경제 Tech 라이프 오피니언 크리스천 잡스 포토 비디오

베다니교회 최창효 목사 조부 故 최봉인 장로 “오래 전 양화진 선교사 묘원 돌보았던 한국인”

기독일보 김진영 기자

입력 Jul 02, 2019 09:34 AM PDT

Print 글자 크기 + -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故 최봉인 장로 손자며느리 최지연 사모의 증언

故 최봉인 장로(오른쪽) ⓒ최지연 사모 제공

故 최봉인 장로(오른쪽) ⓒ최지연 사모 제공 (포토 : )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130여년 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오늘날 유례 없이 부흥한 한국 기독교가 꼭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곳들 중 하나다.

그런데 오래 전, 약 60년 동안 이곳을 돌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바로 故 최봉인 장로. 그의 손자며느리인 최지연(시애틀 베다니교회, 샛별한국문화원 원장) 사모에 따르면 고인은 서교동교회 창립 교인들 중 한 명이었고, 초대 장로였다.

Like Us on Facebook

그는 16살에 혼자 강릉에서 서울로 와 양화진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친구의 전도로 故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됐다고 최 씨는 전했다.

특히 그녀에 따르면, 최 장로는 외국인 선교사들과 가까웠다. 선교사들이 어려운 일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그를 불렀을 정도로 최 장로는 선교사들과 함께 다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선교사들 일기에도 그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고.

그가 양화진 묘원을 돌보게 된 계기는 의료선교를 펼쳤던 헤론 선교사의 죽음이었다고 한다. 최 장로는 죽은 헤론 선교사를 자신의 집 뒤에 묻었고, 이후 선교사들의 무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선교사들은 그에게 감검관(묘지기)이라는 직분을 주었다고 최 씨는 증언했다.

최 씨는 "1900년대 초, 1년에 묘가 약 80개 씩 늘어나자 시할아버지는 하인 소작인들과 함께 묘를 관리하셨다"며 "묘지회에서 돈을 받았으나 일제 때 선교사들이 다 쫓겨 나간 후에도 긴 세월 동안 수 백개의 묘를 믿음으로 관리하셨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는 서양인을 보면 서양 귀신이 나왔다고 도망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선교사를 스승으로 생각하셨다"며 "특히 헤론 선교사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헌신에 특별한 감동을 받으셨을 것"이라고 했다. 

© 2016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의견 나누기

에덴스 유일 예배당 소유한 에덴스한인교회, 건물 뺏길 위험

연말을 훈훈하게 할 사랑의 천사포 캠페인 시작

감격이 없는 삶?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

원로목사들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

"하나님 나라, 경건과 선교의 정체성에서 시작"

온누리교회, 7년만에 임직감사예배 드리고 3명의 교회 일군 세워

베다니감리교회, 부흥회 앞두고 교회 앞 다리 개축공사 마무리

베델믿음교회, '이정석 전도사 목사 안수식' 갖고 하나님 나라의 일군 세워

애틀랜타 엄마들 팔 걷어부치고, 청년들 몸과 마음 채워줄 '엄마밥' 준비한다

술과 마약,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이후 사역으로 부르심...믿는 자들 영적전쟁 전선에 서야

기독일보

3020 Wilshire Blvd. Suite 160, Los Angeles, CA 90010 / Tel. 213) 739-0403, E-mail:chdailyla@gmail.com
회사소개 | Copyright © Chdaily.com. All rights reserved.
기독일보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Real Time Analytics
Web Analy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