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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신비(下)

기독일보

입력 Jul 24, 2019 09:5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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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II. 두 번째 신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우둔함'

 

두 번째 신비는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한 신비이다. 바울이 강조한 신비의 내용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우둔함'이란 영적 무감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지난 2000여 년간 유대민족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설정해 놓으신 섭리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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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울이 제시한 신비이다. 같은 장에서 바울은 감람나무의 원가지가 잘려나갔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이 접목되어 영적 풍성함을 얻게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롬 11:12). 그러나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원가지로 접붙이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롬 11:23).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원가지로 다시 접붙이는 일이 그들 자신이나 이방인인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오르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그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 일어나게 될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신비인 것이다.

에스겔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다시 소생하는 과정을 두 가지로 제시하였다(겔 37장). 첫 번째는 흩어진 마른 뼈가 모아지고 그 위에 살과 가죽이 덮이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여 마른 뼈들은 사람의 형체를 갖추긴 했어도 여전히 생명 없는 시체 더미에 불과했다. 생기를 불어넣는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 마른 뼈들은 살아있는 큰 군대를 이루게 된다.

그런 에스겔의 환상은 이스라엘 독립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은 정치적인 것으로 마른 뼈들이 모이고 그 위에 살과 가죽이 덮이는 모습이었다. 그 이후 메시아닉 유대인교회를 통한 영적 회복은 생기로 인해 큰 군대를 이루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독립 당시 10가정 정도에 불과하였던 예수 믿는 유대인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급증하면서 지금은 그 수가 3만 내지 5만 명으로 확대되었다.

메시아닉 유대인 신학교인 'Israel College of the Bible'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히브리어 신약성서 낭독과 설교 및 간증 등을 24시간 방송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모두에게 복음이 아무런 장벽 없이 전달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복음을 듣고 예수께 돌아오는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바울이 강조한 '유대인의 우둔함'이 풀리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것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왔음을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방인의 때'가 끝남으로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함께 영적 회복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섭리역사의 신비를 직접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방인의 풍성함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다. 바울은 그런 점을 로마서 11:12에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가 세상과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듯이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은 더욱 더 세상과 이방인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롬 11:18). 이스라엘은 참 감람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들은 영적 회복으로 뿌리가 더욱 강화되고, 그것은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가지들을 더욱 충실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목표하신 '한 새 사람' 곧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됨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교회가 완성될 것이다(엡 2:15).

III. 세 번째 신비: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는 나라'

세 번째 신비는 앞의 두 신비와 관련된 것으로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예언의 현대적 적용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내용은 이사야 55:5에 소개된 예언이다: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다'와 '나라'이다. '나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고이'는 성경에서 열국을 의미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현대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고이'의 기본적 의미는 제대로 된 조직과 체계를 갖춘 국가를 의미한다. 이에 대조적인 단어가 '암'이다. 이것은 조직이나 체계보다는 오히려 혈연과 같은 관계성에 강조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부르실 때 약속하셨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 12:2)에서 '민족'은 '암'이 아니고 '고이'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주신 약속 중 하나인 '거룩한 백성'(출 19:6) 역시 '암'이 아니라 '고이'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관계성만으로 이루어진 혈연공동체가 아니라 제대로 체계를 갖춘 강력한 나라인 셈이다.

여기에서의 '고이'를 현대적 기준에 근거하여 분류한다면, 제대로 된 입법, 행정, 사법을 비롯하여 경제와 국방 등 모든 면에서 제대로 체계를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기준은 여러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겠지만, 누구라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일 것이다. 1961년에 발족한 OECD 가입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36개국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1996년 OECD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또 다른 단어가 '알지 못하다'이다. 여기에서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다아'이다. 히브리어 '야다아'는 단순한 정보 습득 차원의 지식(information)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에 근거를 둔 구체적인 앎이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동침하는 것을 '야다아'로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유대민족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라를 뜻한다. 바벨론 포로와 AD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이후 유대인들은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디아스포라 이산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런 유대인공동체가 존재했던 나라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모두가 반유대주의라는 역사경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공동체가 없었던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는 반유대주의 역사나 그런 정서 자체가 없는 청정지역이다.  

전 세계에서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조건 곧 OECD 가입국가이면서 역사적으로 유대인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거기에다가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기독교 중심의 나라이다. 기독교는 유대인들과 구약이라는 중요한 경전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교회는 신약을, 그리고 유대교는 미쉬나와 탈무드라는 각기 다른 경전을 중요시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구약이라는 기본 뿌리에서 나왔다는 공유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과 교회는 공통적인 신앙 뿌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지난 134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이사야 55:5에 나오는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유일한 후보이다. 최근 들어 메시아닉 유대인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유대인 단체들이 한국에 주목하면서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를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사야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먼저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른다고 되어 있다. 그러고 나서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가 이스라엘로 달려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곧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의미한다. '말미암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마안'은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펼쳐 나가실 세 번째 신비로 분류할 수 있다.

(결론)

20세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지난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방랑생활을 하던 유대민족이 옛 고국으로 돌아와 신생 이스라엘을 건립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적 지형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이방인 중심으로 성장하던 기존 교회와 함께 유대인 중심의 새로운 교회운동이 일어난 것도 그러한 변화가 가져온 대표적인 결실이다. 그런 영적 지형변화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 '땅 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곧 '땅끝'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원심의 이방지역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귀착지인 구심점으로서의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땅 끝'의 두 방향 가운데 원심의 이방지역인 '땅끝'에만 주력해 왔다.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한국교회는 '땅끝'의 또 다른 방향인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그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 잠재력과 함께 필요한 여건을 미리 마련해 주셨다. 바른 방향으로 자세만 바꾼다면, 한국교회는 가장 효율적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반유대주의와 연관하여서는 청정지역이다.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땅끝' 선교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땅끝' 개념이 이방인을 향한 원심에서 복음의 출발지인 구심점 예루살렘과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선교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교회는 원심의 이방선교와 함께 구심의 이스라엘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선물로 주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시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극동과 극서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는 '땅끝'을 향하여 서진하는 복음의 마지막 반환점 지역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이룬 많은 나라들 가운데 선진국에 진입한 특별한 두 나라이다. 두 나라는 같은 해에 독립과 정부수립을 하였다는 역사적 공유점도 지니고 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해결해야 할 지역갈등(팔레스타인과의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의 과제)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은 운명과 과제를 가지고 있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적 동반자이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역사적으로 한국은 반유대주의 경험이 없었다는 점이다. 서구기독교 역사는 그 자체가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반유대주의로 점철되어 왔다. 이스라엘 독립 이후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유대인교회가 '기독교인'이라는 명칭 대신 '예수아를 메시아로 믿는 자'라는 뜻으로 '메시아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2차 대전 중에 있었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는 나치정권에 의하여 자행된 만행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독일교회의 동조가 있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한국과 한국교회는 반유대주의를 경험할 기회조차 가지질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영적으로나 정서면에서 이스라엘선교를 어려움 없이 감당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이스라엘의 유대인 메시아닉교회들이나 유대인선교단체들이 한국교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우리들이 주목할 일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비가 열리는 이 때에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의 부름과 그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다(창 12:3). 또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시 122:6)는 축복도 주어져 있다.

한국교회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그들의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면, 약속대로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 주어질 축복은 어떤 내용일까?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지는 개별적인 축복이기보다는 대한민국 전체에게 주어질 큰 개념의 축복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 모두의 염원인 한반도 평화통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함께 힘을 모아 협력하며 기도하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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