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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의 특별기고] TheBibleLand 갈릴리의 여러 지파들

기독일보

입력 Jul 26, 2019 01:44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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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의 여러 지파들

이주섭 목사는 예루살렘 대학 역사학과에서 고대 성읍,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에서 고대 도로를 11년 이상 연구한 역사지리 학자로 이스라엘 현지에 거주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지역과 지리를 꾸준히 탐사하는 등 이론과 경험을 고루 갖추고 있다. 또한 오랜 연구의 결과물을 3D 입체 지도로 제작하는 등 성경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 2월 24일 시작되는 성경학습여행 및 기타 문의: 이주섭 목사 (678) 640-6424 Director of Institute of the Biblical Geography (in Georgia Centur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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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갈릴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부터 찾을 수 있 다. 족장들과 관련된 갈릴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가나안 정복시 중요한 전쟁 가운데 하나는 갈릴 리를 배경으로 한다 (수 11:1-15). 하솔 왕 야빈은 가나안 여러 왕들과 연합하여 메롬 물 가, 곧 훌라 평야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다. 야빈이 군사를 소집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 지역은 마돈, 시므론, 악삽, 북방 산지, 긴네롯 남편 아라바, 평지, 서방 돌 (Dor)의 높은 곳, 동 서편 가나안 사람,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산지의 여부스 사람, 미스바 땅 , 헤르몬 아래 히위 족속들이다.

여호수아는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훌라 평야의 메롬 물 가에 진을 친 가 나안 연합군을 공격하여 큰 시돈과 미 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으로는 미 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두 죽였다 (수 11:8). 야빈과 연합한 갈릴리의 성읍 들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여호수아 11:2절의 ‘북방 산지’ 라 는 표현을 통해 갈릴리의 많은 성읍들 이 이 전쟁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 11장은 이스라엘이 갈릴리를 차지하게 된 배경을 말하고 있다.

TheBibleLand 갈릴리의 여러 지파들
(Photo : 기독일보) (상부 갈릴리에서 메롬 물가 곧 훌라 평야를 본 풍경, 멀리 골란고원이 보인다)

이후 갈릴리에 대한 기록은 각 지파들에게 기업을 분배 (수 13-19)하는 내용에서 잘 알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역에 대한 각 지파들의 기업을 묘사하는 내용은 남쪽 지파들 의 기록에 비하여 매우 간단하게 기록되었다. 남쪽 기업의 경우는 각 지파에 따라 독립적으로, 그 리고 인접한 지파들의 경계에 대해서 가끔 두 번씩 반복되어 기록되었지만, 갈릴리의 여러 지파들 의 기업에 대해서는 하나로 묶어 기록되었다 (수 19:10-39). 갈릴리의 남쪽에 위치한 스불론 지 파 (수 19:10-16)가 처음으로 나오고, 그 다음은 잇사갈 지파(17-23)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아셀 지파의 기업 (24-31)은 스불론 지파와 함께 기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납달리 지파 (32-39)는 아셀 지파 (32-39)와 함께 나타난다. 더우기 스불론, 아셀, 그리고 납달리 지파는 매우 비슷한 어조로 기록되었다. “그 각각은” 이런 표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방향에 관해 경계를 묘사하고는 이후 “돌아서” 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는 이미 정해진 시작 장소로 되 돌아와 그곳에서 다시 방향을 달리해 지파들의 경계를 다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릴리 지역을 차지한 여러 지파들
 

① 잇사갈 (Issachar)

네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레멧과 언간님과 엔핫 다와 벧 바세스며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미치고 그 끝은 요단 이니 모두 십 륙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 었더라 (수19:17-23).

잇사갈 지파는 갈릴리 지역의 남쪽을 차지하였다. 이곳은 다볼 산의 남동쪽 현무암 언덕과 낮은 야산이다. 잇사갈의 기업 기록 방식은 주로 성읍을 열거하며, 열거된 성읍들을 접속사 바브 (waw) 로 연결하였다. 이것은 주로 성읍을 나열하는 방법이다. 잇사갈의 경계는 북쪽 경계만 다볼 산에 서 요단 강까지 기록되었다. 잇사갈의 남쪽 경계는 므낫세의 북쪽 경계와 접하였다. 므낫세의 북 쪽 경계에 관한 기록을 보면: 그 땅의 북은 아셀에 미쳤고 동은 잇사갈에 미쳤으며 (수 17:10). 그리고 아셀과 잇사갈에 있었던 므낫세의 성읍들은 “벧 스안과 그 향리와 이블르암과 그 향리와 돌의 거민과 그 향리요 또 엔돌 거민과 그 향리와 다아낙 거민과 그 향리와 므깃도 거민과 그 향 리들 세 높은 곳 (수 17:11)”으로 이는 므낫세 지파가 기업을 차지하는데 실패한 성읍들과 일치 한다 (삿 1:27). 그러므로 여호수아 17장 11절은 두 지파들의 북쪽 경계 성읍으로 이해할 수 있 다. 벧 스안, 이블르암, 다아낙, 므깃도의 향리들은 아셀과 잇사갈이 차지하였다가 후에 므낫세의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잇사갈과 므낫 세 그리고 에브라엠 산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아비 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는 에브 라임 산지 사밀 (삿 10:1)”에 거 하였다. 돌라와 부아는 잇사갈의 후손으로 계보에 나타난다 (창 46:13, 대상 7:1). 잇사갈의 아들 시므론은 사마리아 산지와 직접 관 련이 있으며 그 위에 사마리아 도 시가 세워졌다 (왕상 16:24). “잇 사갈의 아들들은 돌라와 부아와 야숩과 시므론 네 사람 (대상7:1)”으로 그 중 야숩은 사마리아 오스트라카에서 발견된 사마리아 지명 가운데 야숩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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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기독일보) (남서쪽에서의 다볼산 전경)

드보라의 시에서 잇사갈 지파는 시스라와의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삿 5:15)”라고 기록한 것은 잇사갈 지파에 대한 바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기드온 사 건은 잇사갈 지역에서 일어났음에도 잇사갈이란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놀랍다 (삿 6- 7). 야곱의 축복 (창 49:14-15)에서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 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라는 기록에서 잇사갈은 강제 부역자로 나타난다. 모세의 축복 (신 33:18-19)에서는 스불론 지파와 잇사갈 지파의 밀접한 관계를 싯적 병행구를 통해 설명하며, 이 두 지파들은 의로 운 제사를 드릴 산 (아마도 다볼산)과 함께 기록되었다. 잇사갈의 영역은 솔로몬의 행정 구역에서 열 번째로 나타난다 (왕상 4:17). 그리고 이후 잇사갈 지파는 성경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② 스불론 (Zebulun)

스불론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경계는 사릿에 미치고 서편으로 올 라가서 마랄라에 이르러 답베셋에 미치고 욕느암 앞 시내에 미치며 사릿에서부터 동편으로 돌아 해 뜨는 편을 향하고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또 거기 서부터 동편으로 가드 헤벨을 지나 엣 가신에 이르고 네아까지 연한 림몬으로 나아가서 북으로 돌 아 한나돈에 이르고 입다엘 골짜기에 이르러 끝이 되며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 들레헴이니 모두 십 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수 19:10-15).

스불론의 출발 지점은 사리드 (Sarid-Tel Shaddud; 172-229)이다. 사리드에서 스불론의 남쪽 경계 를 잘 볼 수 있다. 기업은 사리드에서 서쪽 욕느암 (Jokneam-Tel Qamun; 160-230) 방향으로 먼저 기록되었다. 그 후 사리드에서 동쪽 다볼산 방향으로 기록되었다. 다볼산이 어느 지파에게 속했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다볼산에서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 지파가 만났다 (신 33:19, 호 5:1). 다볼산에서 시작된 스불론의 경계 는 벧네토파 (Beit Netofa)를 지 나 벧 입다엘 (Beit Iphtahel) 골 짜기까지 이어진다. 스불론의 서 쪽 경계는 빠져 있지만 그럼에도 스불론의 기업은 지리적으로 매우 분명하다. 남쪽 경계는 이스르엘 평야, 북쪽은 벧네토파 평야를 경 계로 하는 오늘날 나사렛 산지가 스불론 지파에게 속한 곳이다. 야 곱과 모세의 축복문에서 볼 수 있 듯이 스불론 지파는 그 경계가 서 쪽으로는 멀리 대해까지 미치며 그들의 해상 활동이 언급되었다 (창 49:13, 신 33:18-19). 이것은 스불론이 가나안의 여러 해안 도시들과 무역 관계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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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기독일보) (사릿의 전경)

스불론은 솔로몬의 12 행정 구역 가운데 갈릴리의 여러 지파들 중 유일하게 제외되었다. 그 이유 에 대하여 칼라이 (Kallai)의 생각은, 스불론 지역이 잇사갈과 접해 있기에 스불론은 잇사갈의 행 정 구역인 열 번째 구역으로 포함되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스불론과 납달리’라는 표현이 갈 릴리 전체를 나타내는 것처럼, 스불론과 잇사갈은 한 지역으로 여겼을 것이다 (삿 1:6, 10, 사 8:23, 시 68:28).

③ 아셀 (Asher)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지경 안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편은 갈멜에 미치며 시홀 림낫에 미치고 꺾여 해 돋는 편을 향하여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에 달하고 북편으로 입다엘 골짜기에 미쳐서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좌편으로 나가서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 지 이르고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이십 이 성읍과 그 촌락이라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수 19:24-31).

악십과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의 해안 평야에 속하였다. 그러나 아셀 지파의 남동쪽과 북쪽의 경계 는 어디까지 미쳤는지 분명치 않다. 지파의 경계와 성읍들은 일반적인 방식대로 기록되었다.

아셀 지파의 시작은 헬갓 (Helkath)으로, 아셀 또는 스불론 지파에게 속한 갈릴리의 쉐펠라에 위치한다. 26절의‘아셀의 서쪽 경 계는 갈멜에 미친다’는 의미는 갈멜산은 지파들의 경계에 포함되 지 않았음과 시홀 림낫은 Nahr elZarqa (Nahal Tanninim) 보다는 기 손 시내 (Kishon river)라는 표현 이 더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아셀 경계는 다시 원래의 출발 지점인 헬갓으로 돌아와 반대 방향인 북쪽 으로 나아가 스불론과 입다엘 (Iphtahel valley)골짜기까지 미치 고 북쪽 가불을 향하여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도성 시돈까지 이르고, 돌아서 라 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아셀 지파의 경계 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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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기독일보) (앞에 보이는 언덕은 헬갓, 왼쪽으로 보이는 산은 갈멜산, 오른쪽 언덕은 나사렛 능선으로 갈멜산과 나사렛 능선 사이를 지나면 하이파, 악고, 두로와 시돈으로 갈 수 있다)

시돈까지 미친 아셀 경계는 사실 시돈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리타니강 (Litani river)으로 생각된 다. 사사기 1:31절에 기록된 아셀 지파는 많은 성읍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도성 중에는 악고, 시 돈, 그리고 악십이 있으며 헬바 (Helbah)와 알랍 (Ahlab)은 마할랍 (Mahalab-Khirbet el-Mahalib) 으로 추정된다. 아빅 (Aphik)과 르홉 (Rehob)은 아마도 악고의 해안 평야 북쪽으로 생각된다. 기 록 가운데 가나안의 중요한 성인 악삽 (Achshaph)이 빠졌음은 이상하다. 아셀은 므낫세의 북쪽 경 계와 접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수 17:10-11). 돌 (Dor)은 아셀에 속한 지역에 있었지만 그러나 므 낫세의 성읍으로 나타난다 (수 17:11).

④ 납달리 (Naphtali)

납달리 지역은 갈릴리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 지파로써 스불론과 함께 갈릴리를 대표하기도 하며 (삿 4:7, 시 48:28, 사 8:23) 또는 납달리 지파가 갈릴리 전체를 가리키는 동의어로 쓰이기 도 한다 (신 34:2, 왕상 15:20, 왕하 15:29, 대하 34:6). 납달리의 경계 기록이다.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경계는 헬렙과 사아 난님의 상수리 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서편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나가 훅곡에 이르러는 남은 스불론에 접하였고 서는 아 셀에 접하였으며 해 돋는 편은 유다에 달한 요단이며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십 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수19: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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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기독일보) (헬렙에서 서쪽으로 다볼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납달리의 남쪽 경계는 다볼산 (19:33)의 헬렙에서부터 요단까지이다. 경계 기록은 다시 처음 장소 인 헬렙으로 돌아와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향한다. 아스놋 다볼에서 경계는 “훅곡에 이르고 남쪽은 스 불론에 그리고 서쪽은 아셀에 접하 였다” 동쪽 경계는 요단강이 분명 하지만 북쪽 경계와 북쪽의 중요한 성읍들인 단, 이욘, 아벨 벧마아가 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여기에 대하여 나아만 (Naaman)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지파들 간의 기업들은 단 지파가 북쪽으로 이동 하기 전의 기록이기 때문에 빠졌다 는 것이다. 납달리의 북쪽 경계에 대해서는“얻을 땅의 남은 것 (수 13:4-6, 삿 3:3)”과 성경의 다른 내용 (수 11:8,17, 삼하 24:6)들을 근거하여 확인할 수 있다. 아셀과 납달리의 북쪽 경계는 리타니강까지 이르렀음이 분명하며 납달리의 경계는 리타니 강을 따 라 북쪽으로 돌아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이욘 계곡 (the valley of Marjayoun-Ijon)을 포함하고 헤르몬산 남쪽의 요단강까지 이르렀다.

납달리 지파의 경계는 여호수아 19:35-38에 기록되었다.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게데스와 에 드레이와 엔 하솔과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십 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수 19:35-39).

싯딤과 세르 두 성읍은 아는 바 없으며 그 외 4개의 성읍들 모두 확인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쪽에서 북쪽 순서대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두 개의 성읍인 벧아낫과 벧세메스는 사사 기 1:33절에서 취한 것으로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 드보라의 노래에 나오는 “들의 높은 곳 납달리”란 표현은 납달리 자손이 차지한 곳이 매우 높은 산지였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납달리 자손 아비노암의 아들인 바락은 하솔에 도읍한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군대 장군이 었으며, 납달리 지파는 이 전투의 핵심 지파였다. 뿐만 아니라 납달리는 기드온의 빼어난 병사들 (삿 6:35, 7:23) 중에 포함되었으며 솔로몬의 여덟 번째 행정 구역으로 나타난다 (왕상 4:15). 모 세의 축복문 (신 33:23)에서 납달리 지파는“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에서처럼 그 지경이 넓게 퍼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납달리 지파는 후대의 기록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아셀과 잇 사갈 지경까지 넓게 확장되었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들

① 가나안의 연합군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전쟁 (수 11:1-15)

갈릴리 메롬 물가 곧 훌라 평야에서 있었던 전쟁은 유다 산지를 중심으로 한 가나안의 중앙에서 일어난 전쟁 이후에 기록되었다 (수 10). 여호수아 10장과 11장의 두 전쟁은 사마리아 산지를 제 외한 가나안의 남쪽과 북쪽 전체를 차지한 중요한 전쟁이었다. 메롬 물가에서의 전쟁은 가나안의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였던 하솔 왕 야빈이 가나안 여러 민족들을 연합하여 벌인 전쟁으로 하솔은 이 전쟁에서 멸망하였다: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앙을 칼날로 쳐 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 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더라 (수 11:10-11).

②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 (삿 4-5, 시 83:9)

하솔 왕 야빈의 세력은 이스르엘 평야까지 미쳤다. 당시 야빈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였고 그는 철 병거 9백 대를 이끌고 이스르엘 평야의 서쪽 하로셋하고임에 진을 치고 주변을 다스렸다. 하로셋이란 히브리어는 ‘수풀 지역 (woodland)’을 의미하며 고임은 ‘이방’이란 뜻 이다. 하로셋 하고임을 KJV은 이방 하로셋이라 번역하였다. 그리고 NAS, NJB 같은 번역 성경들은 하로셋 하고임을 하나의 지명으로 이해하였다. 시스라와의 전쟁을 위해 드보라와 바락은 백성 1만 명을 소집하여 다볼산에 집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시스라는 철병거 9백 대와 군사를 이끌고 하 로셋 하고임에서 기손 강으로 집결시켰다. 그러므로 전쟁은 하로셋 하고임 근처 기손 강과 다볼 산 사이 이스라엘 평야에서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크게 승리하였고 하솔 왕 야빈의 세력은 크게 쇠퇴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삿 4:24).

③ 기드온의 전쟁 (삿6-8, 시 83:10-11)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아비에셀 후손이다. 사건의 배경은 오브라 (삿 6:11), 이스르엘 골 짜기 (삿 6:33), 하롯 샘 곁, 모레 산 앞 골짜기 (삿 7:1)이다. 이 모든 장소들은 이스르엘 평야 에 있다.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했 던 세력들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다. 그들은 해마다 추수할 때가 되면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부터 요단 계곡을 따 라 이스라엘의 이스르엘 평야까지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 와 이스르엘 평야를 포함하여 해 안평야를 거쳐 멀리 가사에 이르 도록 약탈하였다 (삿 6:3-5). 기 드온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 3백 명을 이끌고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은 모레 산 앞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하롯 샘은 지금의 아인 잘루드 (Ain Jalud)로써 키부츠 에인 하롯 내에 있다. (지금도 하롯 샘에서 흐르는 물은 시내를 이루어 요단강 으로 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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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기독일보) (지금도 하롯 샘에서 흐르는 물은 시내를 이루어 요단강으로 유입된다)

④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나라를 열두 행정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 장관으로 하여금 일년에 한달씩 솔로몬 왕실을 위한 양식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왕상4:7-19). 이 행정 구역 에 갈릴리의 납달리, 아셀, 잇사갈 지파는 포함되었지만 스불론 지파는 제외되었다. 학자들의 의 견은 아마도 스불론 지역은 아셀 또는 잇사갈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⑤ 아람 왕 벤하닷의 공격 (왕상15:18-21, 대하16:2-5)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⑥ 디글랏빌레셀의 공격 (왕하15:29, 17:9, 대상5:6, 25)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이욘과 아벨벧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 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 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디글랏빌레셀 3세는 레바논의 베카 계곡을 출발하여 이욘과 아벨벧마아가를 점령하였다. 그런 다 음 그는 상부 갈릴리의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두로의 약간 위쪽에 위치한 야노아를 점령하였다. 그런 다음 상부 갈릴리와 두로를 잇는 교통로를 차지하고 이제는 방향을 남동쪽의 납달리 게데스 로 향하여 게데스를 점령하고 이론과 메롬을 연이어 함락하였다. 여기에 열거된 성읍들은 앗수르 의 기록에도 나타난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상부 갈릴리 지역에서 어떤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이제 는 하솔을 함락하고 앗수르 군대는 길르앗, 갈릴리, 납달리 온 땅을 차지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점령당한 여러 성읍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 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과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1) 요단강 길과 해변 "지역들은 놓인 아래 발 점령자 이방의

먼저 건너편과 갈릴리의 온 땅"이라 기록되었다.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해변 길이란 바다로 향하는 길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해변 길은 앤손 레이니 (Anson Rainey)의 주장대로 아벨벧마아가에서 지중해 연안 두로의 약간 북쪽 야노아로 가는 길이 유력하다. 요단 저쪽이란 길르앗을 가리키며, 갈릴리 지역은 하고임이란 수식어를 더하여 모든 족속 또는 이방의 갈릴리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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