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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교화소는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지옥"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입력 Aug 02, 2019 10:5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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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픈도어 박한나 탈북민 선교사를 만나다

탈북민 출신 박한나 북한 선교사다. 얼굴 비공개 요청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탈북민 출신 박한나 북한 선교사다. 얼굴 비공개 요청했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포토 : )

"김익두 목사의 손자 며느리, 2번의 재북송 끝에 종교의 자유 찾아 대한민국을 밟다"

초기 한국 교회의 대 부흥을 이끌었던 신유 부흥사 김익두 목사, 그의 손자며느리인 박한나 선교사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1998년 8월 14일 탈북 했지만 북송되고 다시 탈출을 감행했지만 2002년 8월 중국 공안에 붙잡혀 재 북송된다. 2번의 북송, 10개의 감옥을 다녀왔다. "북한의 감옥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지옥"이라며 목소리 높인 박한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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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소에서 모진 고문을 겪은 후 종교의 자유 찾아, 2010년 12월 두만강을 건너 한국 땅을 밟았다. 지금은 오픈도어 선교회의 북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복음의 나팔을 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천국대사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박한나 선교사.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Q : 김익두 목사님께서 최초의 신유 부흥사로 한국 교회 부흥을 이끄셨습니다. 1950년 10월 14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공산군에 의해 피살당하셨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에 대한 기억 혹은 남편을 통해 들은 기억을 여쭙고 싶습니다.

A: 김익두 목사님은 공산군에 의해 피살되기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90살인 어떤 자매님이 당시 성가대로 계셨는데, 자기 어머니와 함께 치마폭 들고 목사님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다고 하셨어요. 그분도 탈북해서 한국에 계세요.

애석하게도 남편에게 들은 건 전혀 없습니다. 북한에선 부부간에도 비밀을 털어놓지 못해요. 북한에선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들은 예수쟁이고, 목사와 선교사는 양의 가죽을 쓴 승냥이라고 비난하지요. 종교는 아편과도 같다고 말입니다. 사람들의 혁명의식을 말살시킨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합니다.

때문에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마음 속 있는 소리를 다 할 수 없어요. 수령사상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소리를 들었다면, 북한 당국은 자수하라고 해요. 그러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지만, 다 거짓말이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그래서 남편도 김익두 목사에 대해서 전혀 말을 안했어요. 저는 너무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들은 얘기로는 96년도 남편이 탈북하면서 조선족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국 목사들이 집회에서 남편에게 김익두 목사에 대해 물었대요. 그리고 그는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고 하더라고요.

Q : 남편 분께서 8살 나이에 할아버지의 순교를 지켜보신 손자셨습니다. 그러나 1996년 탈북하다 북송되셔서 순교하셨습니다. 그 때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남편은 조선족 교회에서 1년 2개월 있었어요. 미국에서 오신 김동식 목사님을 거기서 만나, 북한 선교활동을 도와드렸어요. 어느 날 흑룡강 해림 베델교회에서 목수 일이 필요해서, 김동식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김동식 목사는 돈 5000원을 남편과 동행인에게 주고, 해림 베델교회로 보냈죠. 그런데 같이 동행한 사람이 남편이 얻은 돈 3000원이 탐나서, 중국 경찰에게 밀고했어요.

그래서 남편은 97년 4월 초에 북송됐고 북한 보위부에 끌려갔어요.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어요. 그럼에도 밤에는 거기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나는 못 갔지만 아들과 딸들이 아버지에게 면회 갔는데, 남편은 상 밑으로 아들에게 "예수님을 믿어라"는 쪽지를 전달했죠.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 하신다', '이 땅에서 사는 길은 예수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못 살아도 예수 믿으면 죽어도 천국 가는데,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지옥가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면서 신신당부를 하더랍니다.

저는 아 이 사람이 진리를 찾았구나 생각해서 남편 따라 예수 믿기로 했어요. 당시 90년대는 쌀이 없어 굶주리고 죽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기도하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좋은 건 아니지만 굶주림 없이 채워주셨어요. 그렇게 체험하니까 "아 예수 믿는 건 아편과도 같다고 생각했지만, 속아 살았구나",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 보위부에서 소식이 들려왔어요. 한번 와보라고. 한 사람이 보였어요. 사람 형체가 아니었죠. 멍들고 피터지고 바짝 마른 조그만 아이처럼 있었어요. 남조선의 간첩을 잡았다고 간부는 말하더라고요. 목숨이 붙어있구나 생각할 찰나, 간부는 '네 남편'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남편임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멍들고 얻어터진 모습이었어요.

수령을 반대하고 감옥에서 복음 전하다가 더 가혹한 고문을 당했어요. 감옥 안에서도 자기 먹을 옥수수가루 남한테 주고, 착한분이셨는데. 감방 안에 있는 감시요원이 상사에게 보고를 한 거죠.

저는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했어요. 예수님은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는데, 왜 내 남편은 살려주지 않느냐고 원망했거든요.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알게 됐죠.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에게 순교자의 영광을 주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남편을 통해 교화소에서도 지하교회를 세우셨구나. 그리고 그 일을 내가 맡아서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 박한나 선교사님께서도 탈북 하다가 여러 번 북송당하셨는데 그 때 심정은 어떠셨는지요?

97년도에 5월 6일에 남편의 순교로, 저희 가족은 감옥에 6개월 있었어요. 함께 했던 내 딸은 굶어죽었어요. 당시 26살이었죠.

이후 98년 8월 14일에 다시 탈북 했습니다. 중국에서 머슴살이 했고요. 중국으로 일하러온 사람 밥해줬어요. 그러다 누군가의 고발로 2002년 8월에 북송 당했습니다. 4개의 감옥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삼시 세끼 옥수수죽으로 굶지 않고 먹었어요. 여러 감옥에 이송되면서 하나님이 기회를 열어주셔서, 다시 2003년 3월에 탈북 했습니다.

중국에 체류하면서 남의 집 밑에서 일했어요. 거기서는 오래는 일 못합니다. 누군가가 신고하니까. 그리고 중국 가정교회에서 신학지도 받으면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죠. 그러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 산둥성 위해시에서, 어느 중국여자에게 신분증 위조 부탁했어요. 그런데 여자가 거절더라고요. 중국 가정교회에서 성경 공부했다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공안에 신고했죠. 결국 저는 재 북송 당하게 됩니다.

Q : 북한 수용소에 있으시면서 어떤 고문을 받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북송 되서 두만강 두문시 옆 교화소에 갇혔어요. 이후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각이 난 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어 간부가 허벅지 위로 올라가 마구 밟아댔습니다. 그리고 사정없이 몽둥이로 저를 때리더라고요. 계속 '남한 교회 목사들이 지령으로 보냈느냐'고 추궁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계속 시편 23편을 읊조리고 있었죠.

또 남편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을 보고, 저도 또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3일씩 고문당하니까, 너무 지쳐있었어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정신도 못 차리고 저도 모르게 예수님을 부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이 고문을 이기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또렷한 음성으로 제게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해봐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왜 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 힘으로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니까, 내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게 실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회개가 되더라고요.

보위부는 몽둥이로 저를 계속 때렸어요. 계속 때려도 저는 벽만 보고 있었죠. 실제로 저는 당시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후 실컷 얻어맞고 다른 감방에 갇혔어요. 그 때 갑자기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물 위를 걸었단다." 주님께서 제가 고문 받는 비참한 현장에 오셨던 거 에요. 참으로 감사했어요. 나는 예수님 손에 붙잡힌 자녀구나. 죄 된 생각도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Q : 이후 어떻게 교화소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보위부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공개처형이 예약돼 있으니까,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죠. 다행히도 아직 내 이름은 불려 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영양실조가 왔어요. 눈이 뿌옇게 보였죠. 1주일 뒤엔 눈이 아예 안 보였어요. 의사에게 가니까 펠라그라에 감염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3일 내에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어요. 모든 사람도 "쟤는 곧 죽을 사람"이라고 수군거리니까, 이 악 물고 "나는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 "나 살고 싶다"고 부르짖었어요. 광야에서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살려주신 것처럼 나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진짜 그렇게 해주신다면 남편이 못 다 이룬 복음 선교의 꿈, 제가 이루겠다고 서원했어요. 그리고 이틀 뒤 하나님은 진짜 제게 기적을 주셨습니다. 간수가 3년을 써준 것이지요. 재판에서 교화소 3년형이 나왔어요. 원래 공개 처형으로 생각했었는데.

Q : 영양실조는 어떻게 낫게 되셨나요?

계속 영양실조로 신음하니까, 간수들이 꽃 제비 수용소에 저를 버리고 갔어요. 저는 당시 입술로 기도만 하고, 중얼거리기만 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을 주셨어요. 눈을 차츰 열어주시고 10일 만에 눈이 보였죠. 침도 못 삼키던 것도 낫고,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찬송을 불렀어요.

Q : 교화소에서 어떻게 탈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교화소 에서도 몰래 전도를 하고 신자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렸어요. 물론 들키지 않게 침묵으로 말입니다. 이것마저도 들켜서 간수들에게 몽둥이로 맞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제게 "예수를 위해 핍박 받는 자, 하늘의 상급이 쌓으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교화소나 수용소에서 탈출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군인들은 총으로 다리를 쏴요. 죽이지는 않죠. 다리에 총 맞으면 피가 줄줄 흐르는데, 그러면 군인들은 피로 얼룩진 다리를 붕대로 감아요. 그리고 나무에 달아놔요.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거죠. 너도 그렇게 된다고 위협을 주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교화소에 계속 있을 수 없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기회를 주셔서 다시 2010년 10월 24일에 두만강을 건넜어요. 당시 하나님께서 눈보라 치게 해주셔서, 군인들이 총을 쏘지 못했어요. 감춰둔 돈 가지고 국경에 있는 군인들에게 줬죠. 또 전기 철조망도 있었는데, 대면 바로 즉사입니다. 하나님께 "주님 건너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손을 대보니 전기가 안 흐르더라고요. 그래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브로커가 찾아와 가게 됐고, 미얀마 국경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태국, 대한민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Q :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자유는 공기 같아서 감사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남한의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만 불평을 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는데, 북한의 수용소 생활을 겪으시면서 이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가요?

대한민국에는 교회가 많고 자유가 있고 부러웠습니다. 대한민국 성도들 믿음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대한민국 교회를 위해 기도했죠. 보위부, 공안들의 감시에도 핍박 속에서도 대한민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와보니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땅만 밟고 다니고 믿음이 없어 원망·불평 하는 분도 많이 봤어요.

심지어 탈북민들 중 하나님의 뜻으로 남한에 왔지만 원망 불평하고 예수 믿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어요. 예수를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값없이 받은 예수 사랑을 나눠주며 살기를 바랍니다.

언제 브라질에 갔는데 한 브라질 교회는 "우리는 10년 동안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남한의 교회들은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다른 나라 분들도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남한의 교회도 북한을 위해 절실히 기도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Q : 지금 북한 탈북민 선교사로서, 남한에서 하실 앞으로의 사역은 어떤 건가요?

북한 선교 전문대학원 졸업했고, 사회복지 자격증을 취득해서 하나님의 천국대사로 하나님의 복음을 알리기를 원합니다. 대한민국의 복음통일을 바랍니다. 김익두 목사님 순교하신 자리에서 교회를 다시 세우길 원합니다. 그리고 속히 대한민국의 복음통일을 위해 예수께 받은 사랑 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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