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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칼럼]주안에서는 금수저, 흑수저가 없습니다.

기독일보

입력 Aug 03, 2019 07:3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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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세상 사람들의 싸움은 누가 이기느냐?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을 하나님과 싸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풀 무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때의 싸움의 핵심은 누가 최종 결정권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내가 이들의 죽음을 결정하고.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다르게 외칩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기에 하나님이 풀무에서 건지시고 왕의 손에서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불의 열을 7배나 뜨겁게, 최대의 열로 달구어 그들을 그 풀무에 넣으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세 친구를 붙들고 있는 장병들만 먼저 타죽고, 세 사람에게는 결박한 끈만 타서 없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누구와 어떤 역할의 일을 하는가? 중요한 일입니다. 느브갓네살은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하고 확신에 찬, 자기 신뢰로 시작했지만, 세 친구는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을 구원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보여 줌으로 살아 게신 하나님을 높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누가 나를 결정하고, 누가 나를 돕고, 누굴 믿고 싸워야 되느냐?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기가 느부갓네살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화를 냅니다.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자녀가 엄마의 결정에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인 내가 느부갓네살 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도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교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분노와 명령으로 사는 느부갓네살 인 것입니다. 공손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기회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이제라도 절하면 살 기회 준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내 자녀가 살 기회는 하나님이 주시지 부모가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금 수저는 신앙 안에서는 말이 안 됩니다. 부모가 주는 기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준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훅 불면 날아가 버립니다. 반대로 주 안에서는 흑 수저도 없습니다. 주님이 붙으시면, 세 친구들처럼 불구덩이에서도 산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돈의 기회를 주고, 직장의 기회를 주는 듯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길을 열어 기회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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