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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드보라 선교사] 나의 출애굽기 ⅩⅣ

기독일보

입력 Aug 13, 2019 09:0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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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도어 8월호에서 발췌

©오픈도어선교회

©오픈도어선교회 (포토 : )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동생이 집결소에 면회를 왔다. 동생은 내가 탈북하기 전에 군대에 갔던지라 이번만남이 거진 10년만이었다.

동생은 나를 만나자마자 욕을 한 사발 했다.

"당과 수령을 배반하고 부모형제를 배반했으면 잘 살아야지 이게 무슨 꼴이냐!"

"동생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동생 볼 면목이 없어서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간부는 민망했던지 "야, 그만 욕해라 안 그래도 불쌍한데 뭐 그리 심하게 대하냐" 하면서 말리다가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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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자리를 피하자 동생은 그제서야 울면서 "아! 누나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라고 했다. 간수들에게 혹시 잘못 보일까봐 반가운 마음을 억누르고 그렇게 욕을 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결혼하고 가정을 잘 꾸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겠는지 애써보겠다고 했다. 그 뒤로도 동생은 자주 면회를 왔고 여기저기 돈도 빌려서 나를 위해 뒷 공작을 해주었다. 나의 출소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즈음 동생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누나, 내가 꺼내줄 수 있는데 꺼내주면 중국 갈꺼지?"

"아냐, 난 안 간다...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다"

"약속한 거지? 알았어 그러면 누나를 꺼내줄께."

나는 동생을 만난 지 2달 만에 출소할 수 있었다.

동생과 약속한 대로 어떻게 해서든 북에서 살아보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하루도 못살 것 같았다. 중국에서는 비록 잘 살지는 못해도 하고 싶은 말은 마음대로 했는데 여기는 말도 맘대로 못하고 통행증 없으면 어디 가지도 못했다. 숨 막히는 답답함이 나를 짓눌러왔다. 이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북한은 말 그대로 감옥 그 자체였다. 온 사방의 감시가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나는 언니도 찾고 북에 두고 나갔던 아들 딸도 찾아야했다. 그러나 돈은 1원도 없고 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람을 찾아 중국 가면 돈을 보내겠으니 내 아들 딸 좀 찾아주오... 하고 주소를 쥐어주고 부탁을 했다. 돌아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시어머니와 큰아버지 모두 다 죽었고 우리 아이들은 찾지 못했고, 꽃 제비가 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했다.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북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중국에 놓고 온 갓난아이 생각이 간절했다.

며칠 이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다가 결심을 했다. 무작정 강을 건너기로 한 것이다. 그 전에 장마당 가서 쥐약을 사왔다. 혹시 붙잡히면 다시 감옥생활은 도저히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잡히면 먹고 죽을 생각으로 사온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하고 강을 건너러 갔다. 깊은 밤, 손에 쥐약을 쥐고 강가에 서서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문구를 외우고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하나님, 건너게 해주시면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겠습니다."

용어는 북한식 용어지만 사실상의 헌신기도였다. 당연히 그 당시에는 내가 서원 기도를 드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고, 그저 강을 안전하게 건너고 싶다는 바램만 가득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또 일어났다. 군인을 포섭하지도 않았고 그냥 무작정 강을 건넜는데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탈북을 한 것이다.
강은 건넜지만 정신이 얼떨떨했다. 내가 진짜 중국에 와 있는 것인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연락을 하기 위해서 강가의 불빛을 따라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껏 사정을 해서 전화를 빌렸다. 중국의 애 아빠한테 전화를 하기 위해서다.

애가 막 돐이 지났을 때 북송을 당했는데 그 아이는 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애가 잘못될 줄 알았다. 탈북 여성과 결혼한 많은 중국 남자들이 엄마가 북송되거나 도망가면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이 남자도 워낙 무딘 사람이라 아이를 잘 돌보았을지 확신이 없었다.

전화기의 신호가 몇 번 울리고.... 다행히 반대편에서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를 통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다. 나는 다짜고짜 아이는 잘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버벅대던 남편은 아이는 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상황이 파악이 되었는지 대뜸 전화기로 욕이 한바가지가 날아왔다. 이 여편네가 어디 갔다가 인제 연락 하냐며 나를 막 다그쳤다.

사실 남편 입장에서는 애를 옆집에 맡겨놓고 도망갔다가 몇 개월 만에 연락이 왔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처음 잡혀서 중국 감옥에 있을 때 곧 석방될 중국죄수들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사정 설명과 아기를 잘 돌보아 달라고 연락을 부탁했는데 제대로 연락이 안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전화로는 모든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어서 나 잡혀서 북송 되었다가 강 건너왔다고만 설명하고 나 좀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남편을 만나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응답이요 은혜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고 그저 돌아온 것에 기뻐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생각지도 못한 인도하심으로 나를 이끄셨다.<계속>

* 본 내용은 오픈도어 8월호 드보라 탈북민 선교사의 간증에서 발췌했습니다.

오픈도어선교회
©오픈도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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