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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건국의 비전 "대한민국을 아시아의 모범적 예수교 국가로...”

기독일보 이대웅 기자

입력 Aug 14, 2019 08:1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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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익 박사,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출간

3·1운동 후 독립운동과 해방, 집권 과정 다뤄
개명·부강한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건설 꿈
기독교 토대 국가, 가장 돋보이는 건국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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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유영익 | 청미디어 | 392쪽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은 그가 청·장년기에 보여줬던 왕성한 기독교 선교 열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 깊이 한국을 '예수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처음의 뜻을 여전히 품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역사학회 회장과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원로 학자 유영익 박사가, 8·15 광복절 74주년을 앞두고 24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을 출간했다.

저자의 이승만 관련 첫 저작인 《이승만의 삶과 꿈(2002)》이 3·1운동 이전의 이승만 생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책은 3·1운동 이후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해방, 집권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권의 책은 모두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함께 제시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책에서도 거의 매 장마다 사진자료가 등장해 그 시절과 이승만을 한층 가깝게 만날 수 있다.

이승만의 '건국 비전'에 대해 저자는 "그가 품었던 건국의 비전은 신생 한국을 '아시아의 모범적 예수교 국가', '동양의 모범적 자유민주주의 국가', '반공의 보루', '평등한 사회', '교육 수준이 높고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며 "그의 건국 비전은 한반도에 자유와 평등이 최대한 보장되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양의 일등 국가와 동등한, 개명·부강한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고 정리했다.

더불어 "이승만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착실한 건국의 비전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의 건국 비전은 대체로 그가 청년기에 주창했던 개혁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것이었다"며 "즉 그는 1890년대 후반에 독립협회의 급진적 개혁 지도자로서 대한제국의 정치 제도를 혁신하려 시도했을 때 품었던 꿈을 초지일관 소중히 간직했다, 이를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실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친미 외교 노선을 고수했던 독립운동가'라는 인식에 대해선 "맹목적 친미주의자는 아니었다"며 "해방 후 그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한 나머지 미 군정의 최고 책임자 하지 중장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일이나, 6·25 전쟁 때 미국 정부가 휴전을 성립시키려 하자 유엔군 총사령관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 27,000여명을 석방한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고 반박했다.

이승만
▲맥아더 장군의 '절친'이었던 이승만. ⓒ피스코리아 제공

그에 대한 종합적 평가로는 "이승만은 동서양 학문에 두루 통달했던 천재"라며 "배재학당을 졸업한 1897년부터 호놀룰루에서 서거한 1965년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조국의 독립, 오로지 나라 사랑의 위대한 애국자였다"고 했다.

또 해방 당시 해외 한인 교포들 사이에 전폭적 지지를 받는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던 이승만이 여러 약점에도 초대 대통령으로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로 △대면하는 사람을 첫눈에 압도하는 개인적 카리스마 △비상한 기억력을 비롯한 탁월한 학문적 실력 △능수능란한 마키아벨리적 정치 수완 △비상한 정치자금 모금 능력 △언론 및 저술 활동을 통한 세계적 명성 확보 △동지회를 통한 미국 내 한인 교포들의 지지 확보 △흥업구락부를 통한 국내 지지 세력 확보 △1932년 이후 상하이·충칭 임시정부와의 협력 관계 유지 △선교사부터 군부까지 미국인 지지 세력 확보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당시 한반도 38선 이남에 있던 ①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자 한국독립당 당수인 김구 ②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 겸 조선민족혁명당 주석 김규식 ③건국준비위원장이자 인민당 당수 여운형 ④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 등 쟁쟁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신생 공화국의 최고 집권자가 됐다"며 "그는 당시 남한에서 그와 경쟁했던 다른 여러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일당백', '족탈불급'의 능력과 실력을 갖춘 탁월한 정치가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독교' 관련 내용도 더러 보인다. 저자는 이승만이 1912년부터 자의반타의반 해외 생활을 시작한 것에 대해 '종교적 망명'이라 규정하고 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YMCA에 몸담은 이승만 학감이 맡은 일을 너무 열심히 추진했기 때문에, 105인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이다.

해방 후 혼란한 정국, 기독교 토대 위에 바로 서다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박사가 연설하고 있다.

하와이 망명 시절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민족 교회를 출범시킨 것도 그였다. 이승만은 하와이 한인 기독교인들이 외국 선교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교회를 세워 운영하며 재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독립 정신'을 갖고 있었고, 이는 1918년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교회는 3·1운동 이후 이승만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자, 그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끈질긴 독립운동으로 되찾은 나라에서, 그가 추구했던 것은 '기독교 국가'였다. 저자는 "이승만은 1948년 5월 총선거를 기해 '방구명신(邦舊命新)', 즉 '나라는 오래지만 명은 새롭다'는 휘호를 남겼다. 이 '새로운 명'이란 기독교 하나님의 명을 의미한다"며 "이승만은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적 토대 위에 새 나라를 건설할 것을 염원했다. 이 점이 이승만의 건국 비전 중 가장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이승만은 1903년 옥중에서 발표한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라는 글에서 유교를 '사람의 도', 기독교를 '하나님의 도'라고 칭하면서, '옛적에는 사람의 도로 다스리던 것을 지금은 하나님의 도로 감화시켜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었다"며 "그는 장차 한국인이 소생하고 번영할 수 있는 희망의 원천을 '예수교(기독교)'에서 찾았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3·1운동 발발 후 임시정부 수반으로 추대된 그는 한 미국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장차 한국을 '완전한 예수교 나라'로 만들 예정"이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후 1946년 3·1절 행사에서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영원히 자유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누리도록 합시다"라고 축사했다. 그리고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에 앞서 목사인 이윤영 의원에게 감사 기도를 부탁했으며, 7월 24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이상의 자료로써 우리는 이승만이 기독교의 섭리를 믿었으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음을 확인하게 된다"며 "더구나 그는 제헌국회 개원식이나 대통령 취임식을, 식순에 감사 기도와 하나님 이름으로 하는 취임 선서를 넣는 방식으로 거행했다"고 강조했다.

저자 유영익 박사는 1960년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위해 미국 하버드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기까지, 이승만을 '부패하고 무능한 통치자'로 여기고 그에 관해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1964년 하버드대 동양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승만의 첫 작품인 《독립정신(1910)》을 발견해 읽은 후부터 그를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할 생각까지 했으나,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는 이승만 관련 자료들이 많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그 10년 후인 1994년, 저자는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에게서 '이화장에 비장(秘藏)돼 있던 '이승만 문서'들의 정리를 부탁받았다. 대한민국 탄생 역사를 이승만 중심으로 연구해 볼 생각을 했던 터라, 우남사료연구소를 차리고 본격 정리와 연구에 돌입해 책과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저자는 "되돌아보면 4반세기 동안 이승만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이 기간은 저자가 대학 졸업 후 한국 역사를 연구하는데 할애한 시간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며 "이렇게 오랜 동안 오로지 이승만 연구에만 골몰해 있으면서 이따금 학문적 고독감에 쓸쓸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장 보람 있는 연구 기간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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