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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에 버금가는 무균 수술의 선구자

기독일보

입력 Aug 21, 2019 08:3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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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리스터의 학문과 신앙

(Photo : )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무균(無菌) 수술의 선구자 조셉 리스터

다리가 부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병원에 가서 마취한 후 수술하여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르면 회복될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중반만 해도 사람들은 의사에게 수술 받는 것을 죽음만큼 아주 두려워했다. 당시에는 수술시 마취의 방법이 없었다. 만일 부러진 뼈가 살갗이라도 찌르면 의사는 그대로 환자의 뼈를 절단해 버렸다. 인간은 고통과 통증을 느끼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생명체다.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통증을 호소하는 데, 하물며 몸을 칼로 자르는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마취도 없이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수술을 두려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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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을 믿은 과학자 심프슨 경(1811-1870)에 의해 마취제가 발견된 후 사람들은 마취를 통해 고통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고통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수술 받은 사람들 중 수술한 부분이 곪아서 패혈증(敗血症)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패혈증은 세균이 상처를 통해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거나 중독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마취제가 발견된 뒤로 수술을 받는 사람이 비교적 많아졌지만, 그에 따라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점점 많아졌다. 한때 10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그중 70여명은 패혈증으로 사망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수술로 치료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면 분명히 패혈증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연구에 매달려 안전한 수술 방법을 개척한 인물이 바로, 일평생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했던 조셉 리스터(Joseph Lister:1827-1912)였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리스터는 영국 에섹스 지방 업톤이라는 곳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성공한 상인이면서 렌즈와 현미경을 개량했던 아주 유명한 아마추어 과학자였다. 1847년 리스터에게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무서운 전염병인 천연두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나님, 우리 조셉을 살려주세요.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주 열심 있는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부모와 가족의 간절한 기도 덕분으로 리스터는 기적적으로 치유 받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의학을 공부하기를 원하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리스터는 런던대학에 다시 복귀하여 1852년 런던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에든버러로 옮겨와 외과의사 J. M. 사임에게 사사하였다. 그리고 1856년 왕립병원 의사를 거쳐 1860년 글래스고우 대학의 외과교수가 된다.

패혈증의 원인을 밝혀내다

리스터가 태어나기 전부터 당시 많은 학자들은 패혈병을 방지하여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없을까 여러 가지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상처에 공기가 닿으면 상처가 곪게 되므로 상처에 붕대를 감거나 계속하여 물로 씻어서 공기가 닫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한 의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패혈병으로 사망하는 수술 환자의 수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는 없었다.

프랑스 파리의 빈민 구호 병원 같은 데서는 빈민들의 산실(産室)을 공기가 맑고 조용한곳에 마련하려고 교외에 병원을 새로 지어 산모들을 돌보는 한편 수술도 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이 교외의 병원에서 수술 받은 사람 중에 죽는 사람이 어찌 많았던지, 파리의 사람들은 이 병원을 "죽은 자들의 집"이라 불렀다. 사실 이 같은 비극은 이 병원뿐 아니라 당시 유럽의 어느 병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산부인과 병원에 바이스라는 의사가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역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 예방책을 찾으려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바이스는 우연히 이상한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 병원에는 두 개의 산실이 서로 인접하여 나란히 있었는데, 한 산실에는 훌륭한 의학 기술과 학문을 습득한 인턴들이 근무하고 있었고, 다른 산실에는 의학적 수련을 거치지 않은 그저 경험을 가진 조산원들이 산모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턴들이 간호하고 있던 산실에서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바이스는 이것을 열심히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그 이유를 밝혀냈다. 인턴들은 병원에서 시체를 만진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와, 오염된 환자의 침구나 환자가 사용한 기구와 도구를 만지던 손을 소독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산실로 오는 것을 보았다. '환자나 시체에 묻었던 어떤 유독한 것이 산모의 상처에 전염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바이스는 산실을 청결히 하고 인턴들의 손이나 그들이 사용한 기구와 붕대를 클로르칼크로 소독하도록 조치하였다. 이때부터 이 병원의 사망률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 병은 일종의 전염병이었는데, 바이스의 주의 깊은 관찰 덕택으로 수많은 산모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으로는 무서운 패혈증에서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는 없었다. 비슷한 예로 1870년,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프러시아전쟁이 일어났을 때 많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환자 100명 중 겨우 3명 정도 살아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부분의 수술 환자들은 수술한 부분이 곪게 되어 수술 받은 후 10일이나 20일 지나면 패혈증을 일으켜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생물학자 파스퇴르에 의해 물체가 썩는다든지, 포도가 포도주가 되기 위한 발효는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아주 작은 미생물의 작용에 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파스퇴르는 가열과 여과의 방법으로 포도주 발효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미생물들을 제거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하지만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리스터는 이 같은 파스퇴르의 연구 성과를 읽게 되었다.

'그렇다면, 수술한 상처가 곪아서 무서운 패혈증을 일으키는 것도 상처에 붙어있는 세균 때문이 아닐까? 이 세균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패혈증도 막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균 제거를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몇 달 후, 리스터는 우연히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가 살고 있는 카루스루에 거리의 하수가 어떤 목장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가축이 그 물을 먹고 많이 폐사해버렸다. 목장 주인은 별 도리가 없어 고민하던 중, 누군가가 충고한대로 하류에 약간의 석탄산을 흘려보냈더니 가축이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한번 상처의 소독에도 이용해 보자.'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석탄산으로 상처를 소독한 환자는 패혈증도 없었고 상처가 신속히 아무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는 이 결과를 1867년, <복합골절 및 농양(膿瘍)의 새 치료법>이라는 재목으로 「란세트」라는 유명 의학 잡지에 연재했다.

"다른 모든 일보다도 우선 상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세균은 상처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처를 세균으로부터 막으면 되므로 석탄산에 적신 붕대로 상처 부분을 감싸면 더 무서운 패혈증도 완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의 첫 반응이 나왔다.

"석탄산을 환자의 상처에 바른다니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리스터의 연구 결과에 모든 의사들은 이렇게 비웃었다. 그러나 석탄산 소독의 효과는 금세 여러 의사들에게 알려지고 인정받게 되었다. 리스터는 주목받는 의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리스터는 단순한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석탄산으로 상처만을 닦는 외에도 상처에 세균이 붙지 못하도록 석탄산을 방안에 안개처럼 뿜어 방안의 세균을 사멸하는 방법을 고안하였고, 또한 수술할 때 의사의 손이나 수술 기구, 붕대 등을 전부 철저하게 소독하도록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리스터는 수술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패혈증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외과 수술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후 의학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에는 수술할 상처에 석탄산을 쓰지 않고 페니실린이나 스트렙토마이신 등을 사용해 세균을 막고 곪는 것을 예방하고 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플레밍(1881-1955)이었지만 1871년 이미 리스터는 특정 곰팡이가 박테리아의 성장을 막는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놀라운 결과였다. 다만 리스터는 당시의 과학 기술 수준 때문에 몇 차례 실험으로 이것을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1883년, 리스터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에게 귀족 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리고 이후 귀족 중에서도 귀한 칭호인 "Lord"(경)이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다. 또한 리스터는 대영제국의 왕립 의과 대학 부총장과 영국 과학자협회 회장 그리고 왕립협회회장(1895년)도 역임하게 되었다. 1881년에는 "영국의학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이 연구소는 1903년 "리스터연구소"로 개칭되어 영국 세균학연구의 중심(센터)가 되었다.

겸손하고 경건한 믿음의 과학자, 조셉 리스터

이렇게 의학계의 최고 권위자가 되고 큰 명예를 얻었지만, 리스터는 그의 경건한 신앙처럼 매우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나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분명히 고백할 만큼 하나님을 순종하고 따르는 삶을 산 사람이었다.

"파스퇴르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874년, 그는 믿음과 학문의 선배인 파스퇴르에게 직접 편지를 띄워 자기가 알아낸 소독에 관한 개념이 파스퇴르의 연구 결과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감사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1912년 2월 10일, 영국 켄트 지방의 월머라는 곳에서 조용히 눈을 감은 그는 분명 오늘날 현대 외과 수술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유명한 창조론자인 헨리 모리스 박사는 그의 업적을 "파스퇴르가 인류의 생명에 기여한 공로에 필적할만한 것"이라고 칭송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늘 이 모든 것들을 내세우지 않고 일평생 겸손의 삶을 실천한 훌륭한 기독교인이었다. 대영백과사전은 이러한 그의 인품에 대해 짤막하면서도 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는 전 생애에 있어 겸손하고 조용하며 점잖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단 목표를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겸허히 믿어온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결과였다."

학문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온 분야에 온갖 갑질과 파행과 편법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이 같은 그의 학문적 우직함과 겸손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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