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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총’ 아닌… 주님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겸손

기독일보

입력 Sep 17, 2019 08:5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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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예장 통합 소속 부산 북구 어느 교회 담임목사와 한 장로의 교만과 탐욕으로, 수백 명의 성도들이 떠나갔습니다. 그 이전에도 잘못된 담임목사 청빙으로 이미 2백여 명이 떠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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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성도들 수를 다 합하면, 왠만한 중형 교회 하나가 사라진 셈입니다. 필자 역시 40년 가까이 섬겨온 교회였는데, 무려 세 번씩이나 잘못된 청빙으로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어느 한 교회의 문제일 뿐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떠나가도록 원인 제공을 한 그 교회는, 건장한 남자 집사들과 여성 집사, 권사들을 동원해 교회 출입문 앞에 세워 놓았습니다.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성도들의 출입을 막아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쇠사슬로 교회 출입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잘못된 교회 지도자들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보노라면, 이곳이 성전인지 어느 사이비 집단인지 통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필자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어찌하여 40년을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던 교회에 들어가지 못한 채 쫓겨나,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하도 서러워 그만 눈물샘이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 한두 사람의 욕심이 크나큰 화를 자초하여, 많은 영혼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교회가 사악한 무리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모두가 주님께서 당부하신 겸손한 마음이 사라져 버린, 교만과 탐심 가득한 사탄의 하수인들의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장 10-11절)".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한 식사 모임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손님들이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목격하시고, 안타까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이신다"는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겸손함이 없다면 진정한 마음의 교류는 없을 것이며, 진정한 우정이 있다면 그곳에는 분명 겸손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을 과시한다면 그 우정은 금이 가버릴 것입니다. 윗자리를 원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 자신을 높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친구란 존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호시탐탐 무엇인가를 노리면서, 서로가 경계하며 믿지 못하다 보니, 불신만 쌓일 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이미 주어진 존재입니다. 나의 존재는 나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져 자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며 이 사랑을 위해 나를 길러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부모님이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 자신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받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 아닐까요. 오히려 반대로 '나'의 오늘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부모나 이웃의 사랑과 도움 역시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온전히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과 부모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생겨납니다. 이러한 겸손한 마음이 있는 곳에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교류나 소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겸손을 토대로, 하나님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 대한 진정한 신앙인과 친구로 진정한 사랑이 자라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겸손은 그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를 비워내고 나를 낮추는 자세에서부터 시작하며, 이웃을 향한 따스한 눈빛을 가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함께 교회를 떠나온 안수집사님과 오랜만에 점심 약속을 했습니다. 그 집사님께서는 옮길 교회를 곧 정한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정의를 위해 싸웠지만, 나 자신도 교회 분쟁에 가담한 자로써 마땅히 회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니, '아!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의 사람이구나! 예수님께서 당부하시는 겸손을 실천하는 집사님이시구나!' 싶었습니다. 존경과 동시에, 가까이에서 자주 보며 만나야 할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심 너무 기뻤습니다.

교회 지도자로서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성도들의 영혼이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바라볼 때, 주님의 시선과 주님의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팔아 넘기려는 가룟 유다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빛은, 눈총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장차 겪어야 할 안타까운 일을 염려하는 사랑의 눈빛인 것입니다.

'눈빛'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기색을 말합니다. 반면 '눈총'은 독기가 오른 채 쏘아보는 눈빛을 말합니다. 또 '눈웃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만 살짝 웃는 모습을 이릅니다.

"죽어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베드로가 세 번씩 부인할 것을 아셨던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눈총'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눈빛'으로 성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당부하신 겸손을 배우고 익히며, 선한 눈빛과 선한 눈웃음으로 성도들과 세상을 향해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 병들어 고통받는 이들, 억압에서 억눌린 자들, 그리고 가난과 헐벗음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그 눈빛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 시선과 눈빛이 없다면 교회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는 분이며, 오롯이 상석자리에만 급급한 세상적인 눈높이에 어울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지금이라도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주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낮은 자세로, 그리고 겸손한 인격자로 거듭나 주님과 세상을 위해, 그리고 교회 안의 성도들을 위해 주님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아가는 신앙인들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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