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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설교연구원 설교] 거룩이 그리스도인 삶의 답이다

기독일보

입력 Sep 20, 2019 09:4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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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아트설교연구원 연구원들의 서평과 원장 김도인 목사의 설교 글쓰기 원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들의 연구 결과물, 즉 설교문을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설교문을 공개합니다. 먼저 원장 김도인 목사의 베드로전서 설교를 연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3-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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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나치와 취향 저격

'취향나치'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취향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곧 바로 공격하는 것을 가리킨다.

'취향저격'이란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자신의 취향에 꼭 맞춘 것처럼 매우 마음에 드는 것을 가리킨다.

'취향나치'와 '취향저격'은 '관심'과 관련이 있다. 취향나치는 관심 없음이라면 취향저격은 관심 많음이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다. 예수님의 관심은 죄인의 구원이다. 어떤 친구는 관심이 예스다. 그 친구는 '아니요'를 거의 않는다. 어떤 말에도 '예스'를 한다. 어떤 지인의 관심은 약점 파고들기다. 약점이 보이면 물고 늘어진다. 어떤 지인의 관심은 사람이다. 틈만 나면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 저의 관심은 저의 성장이다.

사람마다 관심 기울이는 것이 있다.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관심 갖는 것에 따라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겨라

어떤 사람의 관심은 큰 것에 있다. 이런 사람은 작은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좀팽이'라고, 상종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람은 작은 것에 관심을 둔다. 연약한 사람을 돕는 것을 삶의 행복으로 삼는다. 어떤 사람은 선교 사역에 관심을 둔다.

작은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는 그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반면, '큰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한 말이 아래와 같다.

"'거대규모'는 적이며 죄악이다."

그는 거대 규모는 적이며 죄악이라고 한다.

동료인 안영혁 목사가 《작은 교회가 더 아름답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고 한다. 지금도 아름다움 작은 교회를 이루는데 앞장서고 있다.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규모의 거대함은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만드는 온상일 뿐 아니라, 구성원의 필요나 요구에 둔감하게 되고, 무절제한 권력 독점이나 권력 남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작은 것은 인간 친화적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이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편하고, 즐겁고, 지속적이다. 규모는 현상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다. 인간이 조직이나 기술이나 자본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고, 진정으로 자유와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는 사회 환경의 문제이다."

슈마허는 큰 것을 싫어한다. 규모가 거대한 것은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큰 것은 결국 권력 독점이나 권력 남용을 낳는다.

오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다. "적게 내는 사람만 회비를 100% 올려라."

이런 사람은 큰 것만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슈마허의 말이 떠올랐다. '거대 규모는 작은 것을 짓밟는 존재이구나.'

관심이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규정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거룩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하나님이다. 베드로도 관심은 '거룩'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극심한 핍박 속에 있었다. 핍박이 극심할 때 관심은 도피다.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가질 관심이 거룩이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거룩에 관심 갖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니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15절과 16절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관심은 거룩에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관심을 간파한 뒤 거룩에 관심 가졌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다. 하나님, 베드로의 관심이 거룩이라면 우리도 거룩에 관심 가져야 한다.

요즘 국민들의 관심은 법무부 장관이 된 조국이다. 최근에는 제13호 태풍 '링링(LINGLING)이 한반도를 통과했다.

그 때 관심은 태풍 피해 최소에 있었다. 청년들의 관심은 직장이다. 우리나라는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좋은 직장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으로 일하고자 한다.

성경은 거룩에 관심이 많다. 대표적인 성경이 레위기다. 레위기는 거룩을 이야기 한다. 거룩한 다음 신명기의 축복된 삶을 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거룩에 관심이 많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말할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좁은 문은 거룩함을 갖춰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문을 들어갈 수 있으려면 거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거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거룩해야 한다. 그럼 왜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신 말씀을 강조하는가?

거룩이 그리스도인 삶의 답이기 때문이다.

왜 거룩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답인가?

18절과 19절에서 대답을 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거룩이 그리스도인의 답인 것은 예수님의 피로 대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로 피로 대속함 받았다면 예수님과 같이 삶이 거룩해야 한다.

거룩에 사무침이 과제다

거룩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이젠 한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거룩을 그리워해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살려면 그 이전에 거룩을 그리워해야 한다.

말레이 뤼달의 책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따르면, 사람들의 그리움은 네 가지라고 말한다. '아름다움, 돈, 권력, 명성, 섹스'다. 이런 그리움은 육적인 그리움이다.

육적 그리움이 탐닉되어 있는 현대인들은 거룩을 그리워할 리 없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한다. 기르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을 그리워해야 한다. 그리워할 때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된다.

중국의 고전, 《시경》에 작자 미상의 시가 있다. 제목이 〈누군가 그리울 때〉다.

"칡을 캐며 임 생각
하루만 못 봐도 석 달 같구나.
쑥을 캐며 임 생각
하루만 못 봐도 일 년 같구나.
약쑥 캐며 임 생각
하루만 못 봐도 삼 년 같구나."

이 시는 '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그렸다. '님'에 대한 그리움 사무치면 '님'을 만나야 해결 받는다. 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돌부처가 되었다. 바로 그 유명한 망부석(望夫石)이 된 아내이 이야기다.

방부석은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의 아내에 대한 전설이다.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있는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수릿재에 올라가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그대로 돌부처가 되었다. 그 바위를 뒷날 사람들이 망부석이라 불렀다.

'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니 망부석이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면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사무침이 있어야 한다.

아랍 항공사 비행기 모니터에는 특이한 아이콘이 있다. 그 아이콘은 메카의 방향을 알려준다. 현재 위치에서 메카의 거리를 알려준다. 메카를 보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무친 그리움 때문이다.

이슬람인들의 신앙심은 이 정도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심이 뒤져서야 되겠는가. 이슬람인들은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거룩이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거룩은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이다. 거룩이 삶의 중심이라면 하나님을 가진 자다.

'씨알사상'을 주창한 함석헌 선생은 그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가졌는가? 거룩을 가졌는가?

이 시의 '그 사람'을 '그 하나님'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은 시가 된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하나님'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는 '저 마음이야'라고 믿어주는 하나님을 가져야 한다.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주는 하나님을 가질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사무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하나님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답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저는 10년 간 독서를 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 붙잡았다. 하나님 한 분만 답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조롱과 힐난을 했다. 목회를 하지 않고 독서를 하니, '정신 차리라'고 한 마디씩 했다. 신학 책 읽지 않고 인문학 책을 읽으니 목사가 할 짓이 없냐고 질책을 했다. 가족도 외계인 취급했다.

이럴 때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내 편이 되어주셨다. 나를 이해해 주셨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나를 위로해 주셨다.

하나님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 내 편이 되어주신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될 때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어주는 것은 거룩을 품는 것이다. 거룩이 삶이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거룩을 품었다. 핍박을 받지 않는 우리는 더더욱 거룩을 품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거룩을 품으려고 하지 않는다. 거룩이 불편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룩을 품는 순간 삶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거룩을 품으면 절제해야 한다. 가던 길을 멈춰야 한다. 전에 하던 것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을 품어야 한다. 우리가 거룩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거룩의 습관을 만들어라

거룩을 그리워해야 한다. 거룩에 대란 그리움이 사무쳐야 한다. 세 번째로 거룩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거룩이 습관이었다. 예수님도 거룩이 일상이었다. 이제 우리도 거룩이 습관이어야 한다.

사사키 후미오는 그의 책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에서 습관을 다음과 정의 내린다. "의식을 불러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하는 행위다."

사사키 후미오는 습관의 세 가지 요소를 '신호', '반복행동', '보상'이라고 한다. 결국 습관은 보상으로 어어 진다. 좋은 습관으로 살면 보상이 뒤따른다.

습관이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습관이 재능이 되기 때문이다. 재능은 능력의 사람을 만들어 준다. 재능은 탁월함으로 이끈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은 습관이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거룩은 재능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은 습관을 지나 재능이 되어야 한다.

'마아트(maat)'라는 말이 있다. '마아트'는 인간 개개인에 맡겨진 고유한 미션을 찾는 행위다. 명로진은 그의 책 《나는 활자 중독자이다》에서 '마아트'를 다른 말로 '달란트'라고 했다.
이집트의 전해오는 내세관에 따르면 사람들이 마아트를 다하지 못한 자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마아트를 다한 이는 부활한다고 한다.

배철현 서울대 교수는 그의 책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소개한다. 이집트인의 내세관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신 앞에 나아가 자신이 생전에 자신의 마아트를 찾아 그 맡겨진 의무를 다했는지 점검받는다. 그것이 마아트다.

배철현 교수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죄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이것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은 재능 곧 달란트다. 이 달란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거룩의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외모로 향한다.

중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류쉰안은 그의 책 《심리학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에서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아름다운 외모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고 한다.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외모 꾸미기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사람은 내면을 가꾸든지 외모를 가꾸든지 둘 중에 하나를 쫓는다. 거룩을 추구하면 외모를 추구하지 않는다. 외모를 추구하면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달란트인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을 것이 외적인 것을 달란트로 삼는다.

▲김도인 목사.
▲김도인 목사.

베드로는 거룩이 달란트인 사람은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절)."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한다. 그 이유는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추구할 때 거룩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답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거룩이 무너졌다. 교회가 거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을 되살려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을 되살리려면,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거룩을 가져라 거룩을 그리워해라. 거룩을 품어라. 거룩이 삶의 습관이 되라. 마지막으로 거룩이 달란트가 되라.

이런 그리스도인이 될 때 거룩이 그리스도인 삶에서 답이 된다. 거룩의 사람이 되고, 거룩이 삶에 답이 되는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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