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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은 왜 피 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금지하였을까?

기독일보

입력 Oct 07, 2019 08:20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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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설교연구원 인문학 서평]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해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김훈종 | 한빛비즈 | 344쪽 

지배자들이 인문고전 독서 막은 이유
피지배계급 '바보' 만드는 지름길이라
고전, 시공간 넘어 늘 새롭게 해석돼

'고전(古典)'은 '옛 고(古)', '책 전(典)'을 써서 '오래된 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전(古典)'은 단순히 오래된 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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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중요성은 끊임없이 이야기되어 왔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려운 고전을 왜 현대인들이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왜 지배하는 계급이 지배받는 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금지하였을까? 인문고전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배받는 계급을 바보로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통일된 천하를 지배하기 위해 '분서갱유', 즉 책을 없애버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전을 읽으면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로워 진다. 지배 받는 계급들이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로워지면 지배하는 계급에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전학자인 정천구 선생님은 '맹자독설'에서 고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바로 끊임없는 해석의 연속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늘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럴 여지가 없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책'으로서 고서(古書)일뿐이다.

고전의 가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고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대마다 거듭 새롭게 해석되면서 오래도록 고전의 명성을 누린다. 새롭게 해석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다. 죽은 자의 찌꺼기로 남을 따름이다."

또한 클리프턴 패디먼은 '팽생 독서 계획'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전보다 더 많이 자신을 발견한다." 고(故) 신영복 교수도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고전만이 갖는 가치? 본질에 집중
동양 철학, '제자백가 사상의 주석
인간의 삶은 결국 똑같기 때문에
앞서 고민한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을 읽는 사람들은 고전을 읽는 이유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전만이 가지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바로 고전은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본질에 집중하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아름답게 살아갈 수가 있다.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라는 책은 고전을 읽고 싶어지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부제를 이렇게 달고 있다.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이는 고전을 읽으면 나답게 살아진다는 것이다.

저자인 김훈종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SBS 파워 FM '최화정의 파워타임' PD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먹을 갈아 화선지에 붓으로 써가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외웠다. 한글 반 한자 반 신문을 옥편 찾아가며 읽었다. 이미 윈도95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에도, 대학에서 '맹자' 원문을 한 땀 한 땀 필사하며 읽혔다. 정이 떨어질 법도 하지만 삶의 굽이굽이마다 고전을 읽었고 큰 힘을 얻었다.

저자는 이제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의 맛을 조금 알기에,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 책도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쓴 책이다.

저자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기에,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동양철학 중에 제자백가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서술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양 철학은 결국 '제자백가 사상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3,000년이란 시간은 그저 한 점(點)에 지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산파술로 대중들의 무지를 깨우치던 시절의 인류나, 4차 산업혁명을 코앞에 둔 현재의 인류나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를 놓고 여전히 우리는 고민하고 있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요즘 애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만'은 여전하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편리해진 세상에서, 도대체 왜 불평만 하지?' 라고 생각한다. 그 편리(便利)가 '철제 농기구의 등장'이어도 마찬가지고, '스마트폰이나 자율 주행 자동차의 출시'여도 마찬가지다.

알파고가 세상을 변혁시키는 이 시대에 케케묵은 죽간을 꺼내 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사(有史) 이래 인간은 결국, 똑같다. 현대인들이 비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하다. 수만 년 전, 기아(飢餓)에 허덕이던 환경에 적응된 기초 대사율이 여전히 우리 몸뚱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이 제아무리 바뀌어도, 태어나 엄마 젖을 물고, 거웃이 나기 시작하면 반항하고, 어른이 되고, 웃다가 울고, 가정을 이루고, 늙어가고, 병들고, 결국엔 죽는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내놓은 제자백가 사상가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일은 한 번쯤 해봄 직한 시도다."

저자는 결국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제자백가 사상가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것은 인간의 삶이 결국 똑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이것을 먼저 고민하고 해답을 내놓은 고전을 읽으면 이 시대의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기, 참아가며 이루는 성취 아니라
자연의 섭리 따를 때 충실하게 실현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경험, 몰입

이 책은 2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저자는 이 시대 가운데 필요한 부분들을 소제목으로 정해, 그것에 맞는 고전 속 내용을 가지고 와서 설명하고 있다. 자기만의 해석을 하고 있다. 현재 살아가는데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두 가지만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극기(克己)다.

흔히 극기 하면 한겨울 설원에서 웃통을 벗은 채 얼음장을 벗삼아 기합을 넣어가며 팔굽혀펴기를 하는 특전사군인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된다. '하면 된다!'를 이마에 두르고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공부하는 고시생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극기(克己)는 오히려 자연의 섭리를 따를 때 충실하게 실현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극기는 자신의 마음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는지가 오로지 관건이다. 자기 검열, 자제, 검약, 욕망의 거세, 고통을 꾹꾹 참아가며 이루어내는 성취 따위에 극기의 정수가 있는 게 아니다. 충일한 '몰입감'이 극기의 본질이다.

사욕을 버리는 게 아니라, 반대로 '끝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 굴을 파고 들어가 욕망을 좇아가며 벼리고 벼린 욕망을 껴안고 살아내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극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진정한 극기를 경험해본 적 있는가?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경험이 바로 '몰입'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돈과 시간을 들여 '사서 고생'을 한다. 템플스테이에서 나물만 먹느라 허기진 배를 움켜쥐는 것,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를 기웃거리며 고산병과 추위를 견디는 것,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부여잡고 걷고 또 걷는 것. 이 모두가 몰입이고 진정한 의미의 '극기'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이다."

저자는 진정한 극기는 어떤 것을 이겨내는 정도가 아니라,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라면
먼저 사상가로서 일가를 이루고
성취를 이뤄야 한다고 이해해야

둘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제가(齊家)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제가(齊家)의 가(家)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가(家)가 아니다. 여기서의 가는 오히려 '일가를 이루었다'의 가와 일맥상통한다.

종갓집을 벗어나 자신만의 집안을 꾸린다는 뜻도 있지만, 한 분야의 성취를 이룩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가를 의미한다. 유가, 법가, 도가, 묵가, 병가 종횡가, 음양가, 농가, 명가에 심지어 잡가까지.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는 해석은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사상가로서 일가를 이루고 성취를 이뤄야 한다.'로 이해하면 된다."

저자는 이렇듯 우리가 잘못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이 책을 통해 바로잡아 주고 있다.

성경은 분명 최고의 진리이자 고전
세세한 부분까지는 언급하지 않아
성경 기준으로 여러 고전들을 삶에
적용한다면 유익한 점 많이 있을 것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최고의 고전인 성경이 있는데 굳이 고전을 읽어야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다.

성경은 분명히 최고의 진리이고 고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로 주신 책이다.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큰 원리를 말씀해 주고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세세한 부분까지는 언급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배려'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고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잘 제시해 주고 있다. 성경을 기준으로 그 부분들을 삶에 잘 적용하면 유익한 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복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저: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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