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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김진욱 선교사, 터키에서의 ‘열매’

기독일보 이대웅

입력 Dec 12, 2019 11:42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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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청년들과 교제하며 집으로 초청해 복음 전도
관심 보이는 모습 기뻐, 청년 세대 소망 발견
전도하지 않으면 자지 않을 정도로 열혈 선교

그날, 하루종일 이사 돕고도 저녁에 전도하러
외국인 선교사로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살아

그곳 영혼들과 함께 진정 예수님처럼 살았다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소년 괴한에게 희생된 故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난민 사역이 소속 선교단체의 선교편지 등을 통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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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선교사는 2016년 봄 터키 남동부 시리아 국경지대인 샨르우르파(Sanliurfa)에 정착을 시작했다. 그는 시리아 난민, 특히 쿠르드 난민을 품고 기도해 왔기에, 샨르우르파 도시에서도 시리아 쿠르드 난민이 주로 거주하는 바을라르 바쉬라는 곳에 정착했다.

김 선교사는 이사 온 그 주간에 만난 할릿이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메르하바(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터키어를 배우고 싶다는 말로 사역을 시작했다.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집 주인의 친척이었던 할릿에게 김진욱 선교사는 잘 안 되는 터키어로 “성경을 읽어보라”며 예수님을 전했고, 할릿의 가정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김진욱 선교사는 언어를 배우면서 자주 밤을 새며 할릿에게 복음에 대해 설명했다. 할릿이 구약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현재 세상의 상황을 설명하지 못해 선배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해 같이 설명하면서 할릿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초청했다.

배가 나온 할릿과 함께 운동하면서 규칙적인 생활과 다이어트를 권하기도 하고, 한국 음식 맛도 보게 했으며, 터키 음식도 같이 나누면서 끊임없이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순교 수개월 전 디야르바크르(Diyarbakır)로 이동한 뒤에도 1-2주마다 우르파에 있는 할릿을 방문해 믿음과 말씀을 권하고, 현지의 신앙인 형제 자매들을 소개하면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했다.

결국 할릿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해 결국 믿음을 결단했다고 한다.

할릿의 친척 집 3층에 거주했던 김진욱 선교사는 그 친척 가정에 자주 찾아가 예수님을 전했다. 나이가 많지만 손님 접대를 잘하고 쿠르드 민족의 설움을 잘 알던 한 장년 남성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아저씨는 “그런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목 부위에 종양이 있던 장년 여성에게는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했고, 이들은 아들이 생긴 듯 좋은 복음의 교제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기도 팀이 샨르우르파를 방문했을 때도 이 가정에게 은혜가 흘러가도록 초청해 귀한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러다 복음을 들었던 주인 집 장년 남성이 뇌종양으로 입원했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김 선교사는 복음에 더 잘 집중하는 청년들을 사역 대상으로 삼게 됐다.

그래서 대학생·청년들과 자주 교제하고, 예배에 초청해 복음을 전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처한 시대 환경에 대한 분노, 전쟁과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김 선교사는 청년들이 소망 없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들에게 진정한 천국 소망에 대해 설명하며 복음을 나눴다.

김진욱 선교사는 “청년들과 교제하며 집으로 초청해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복음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기뻤다”며 “청년 세대에 소망이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김 선교사는 “한 번씩 단기팀과 함께 하는 초청 잔치를 통해, 많은 영혼이 돌아왔다. 이 초청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영혼들을 만나며 교제하는 일들이 즐겁고 감사했다”며 “특히 말씀과 찬양 준비를 하며 저 스스로 은혜를 경험했고, 초청한 영혼들과 예배드릴 때 그 은혜가 모두에게 흘러갔다”고 전했다.

단기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그는 모든 복음 초청잔치와 예배들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종처럼 열심히 섬겼다”며 “팀과 주님을 섬겼던 영혼들을 사랑하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찬, 영혼이 맑고 성령충만한 선교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지난 지방 선거 이후 터키 국내 정치상황이 바뀌면서, 시리아 난민의 상황도 크게 바뀌게 됐다. 이에 김진욱 선교사는 디야르바크르로 이동을 결정했다고 한다.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디야르바크르에서 김 선교사는 그토록 바라던 청년 세대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매일 만남과 복음의 교제를 통해 많은 청년들이 복음에 반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들을 목격했다. 그는 “이 민족을 향한 기대와 소망이 커졌다”고 한다.

그는 전도하지 않고는 밤에 잠자리에 들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선교사였다. 카페에서, 공원에서, 캠퍼스에서…,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영혼들을 만나 교제하며 천국 소망을 나눴다. 이는 믿음으로 드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 낮에는 친구의 이사를 하루종일 도와줬다고 한다. 이후 그 날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저녁식사 후 카페에 가서 현지 영혼을 만나 교제했다.

한 관계자는 “더 많은 영혼들을 만나 천국 소망을 전하기 위한, 자신과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김진욱 선교사의 순교 다음날, 터키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이 현장에 찾아가, 유가족을 비롯해 그곳 성도들과 함께 천국환송예배를 거행했다.

끝으로, 이들은 예배 후 김 선교사 집을 방문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앙카라 교회 지도자 중 1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 지역은 음침하고 가장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부유한 외국인 선교사가 그런 동네에 살았다는게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던 집은 오래된 아주 작은 집으로 매우 습했고, 집 안에는 쇼파도 침대도 가구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거실 시멘트 바닥에는 이곳에 흔한 카페트도 없었습니다.

벽면에 기대고 앉는 등받침밖에 없었습니다. 그 동네 가난한 현지인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곳 영혼들과 함께 진정 예수님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김진욱 선교사의 터키 사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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