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원 얻는 자가 적은가?

구원은 원하는 자에게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다. 그래서 구원을 기쁜 소식(good news),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이라고 한다.

다음은 '구원의 은혜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구절들이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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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구원에의 초대'를 '완비된 잔치에로의 초대'로 비유했음은, 그것이 값없이 베풀어지는 잔치이기 때문이다.

만일 잔치 참여자에게 입장료(admission ticket)가 부과된다면, 그것은 부담스러운 연회이지 결코 기쁜 잔치일 수 없다.

◈구원은 값없이 은혜로 주어지는데, 왜 구원받은 자가 적다 하는가?

구원이 값없이 주어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만일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면 구원받는 수가 많아야 하는데, 성경에 의하면 '구원 얻는 사람의 수가 적다(눅 13:23)'고 한 것을 보면, 구원은 공짜가 아님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많고 적음'은 '구원이 공짜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만일 '구원가(救援價)'가 요구된다면, 구원 얻을 사람이 아예 '없다'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 외, 우리에게 '구원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율법적 행위를 '구원가'로 산정(算定)하고,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며 우문(愚問)한 '부자 관원'에게 예수님이 경매(競買)하듯 계속 구원의 '액면가(額面價)'를 높여 제시한 것은(마 19:17-21), 인간의 율법적 행위는 '구원가'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유대 율법주의들처럼, 설사 어거지로 율법적 행위를 '구원가'로 산정(算定)하더라도, 그 값은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혹은 '적선보시 극락왕생(積善普施 極樂往生)'이라는 여타 종교의 구원 산정(算定)처럼 두루뭉술해질 수밖에 없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질 때만 그 자태가 또렷해진다. 예수님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고 하신 것은, "사람이 구원가(救援價)를 지불하려 할 때 '구원의 길'은 모호해지고, 구원이 은혜에 의존될 때만 '구원의 길'이 명료하고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것(마 7:14)"은 지불해야 될 '구원가'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공짜'이기 때문이다. 성경 시대나 지금이나 "싼 게 비지떡, 비쌀수록 좋다"는 세태적(世態的) 경제관념이 구원론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공짜에 무슨 구원이 있겠는가?'라는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짜 구원'에 등을 돌리게 해, 구원의 문을 '좁게' 만들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싼 것'에 견디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고문일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 '자기 의행(義行)'을 배제시키고 '믿음으로만 구원 받으라'고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수치였다.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요 1:46)'는 당대의 인식도, '싼 것에는 구원이 없다'는 '경제 논리'가 작동한 결과이다. 이런 '경제적 구원관' 아래서는 비싼 '구원가'를 요구받는 율법주의 종교에 사람들이 몰릴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 불교, 힌두교는 다 '엄격한 계율'로 유명하다. 이들 종교가 '세계 4대 종교' 반열에 든 것은 '비싼 대가를 요구할수록 좋은 종교이다'는 경제적 구원관의 반영이며, '쉬운 종교가 선호 받을 것'이라는 일반의 추정을 묵살시킨다.

그리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마 7:13)"는 말씀은 '구원의 길이 너무 쉬워 보여 많은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다가 멸망에 빠뜨려 진다'는 뜻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구원받는다'는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어 멸망당한다"는 뜻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흔히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고행적(苦行的) 종교'를 말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종교란 당연히 고행스러워야 진국이고,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종교일수록 고급지다'는 '경제적 구원 관념'에 익숙하다.

◈구원은 그것의 쉽고 어려움에 달려 있지 않다

모두에 말했듯, '구원'은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와 같아서 아무 대가 없이 와서 그것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적 구원관'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복음적 구원 잔치에는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 들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다.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눅 14:18)". 물론 이들은 이방인에 앞서 먼저 '구원에의 초대를 받은 유대인들'을 상징하지만, 복음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이기도 하다. 구원이 '값없이' 주어진다고 무조건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가(救援價)'를 요구받는다고 배척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구원에의 초대를 '수납' 혹은 '거부'하는 것이 순전히 인간 성향, 의지의 문제만이 아닌 다른 요소, 곧 하나님의 구원 예정과 관련돼 있음을 보여준다. 곧, 하나님이 눈을 열어 준 택자들은 복음에 환호하게 되고, 눈을 감기게 한 불택자들에게는 그것이 미련하게 보인다(고전 1:18).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는 말씀 역시 신중한 해석을 요한다. 흔히 이 구절을 읽을 때 '얼마나 구원이 어려우면 그렇게 들어가길 원하는데도 뭇 들어갈까'라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이는 '인간이 아무리 구원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못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이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고 하신 말씀이 부정돼야 한다. 하나님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를 결코 내치지 않으신다.

이는 잘못된 방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에 대한 경계이다. '구원의 문'은 오직'예수 믿음'이며, 이'예수 믿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다른 데로 넘어오는 자들을 "절도며 강도(요 10:1)"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대표적인 이들이 '믿음의 의(義)'가 아닌, '자기 의'를 세우려다가 하나님의 의를 부정하고, 그 결과 의에 이르지 못했던 이스라엘(롬 10:3)이다.

'구원의 문'을 '좁은 문(마 7:13)'이라 했음도, 'SKY 대학'에 들어가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안 되듯, 구원도 출중한 실력을 갖춰야만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의 무능자,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를 구원하여 세상의 지혜자, 능력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전 1:26-29)"는 성경의 가르침이 부정돼야 한다.

오직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길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좁은 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마지막으로 '구원의 길이 협착하다(마 7:14)'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원을 받으려면 '온갖 율법적 의행(義行)'과 '엄청난 수고'가 따라야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빌 2:10)는 뜻이다.

혹자는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일이 대수겠느냐 할지 모르나, 형식적이거나 거짓되지 않은 '참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인간 한계 밖의 초자연적인 성령의 일이다. 그것은 온갖 율법적 '의행'보다 더 어렵다.

율법이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 3:12)"고 하니, 죽지 않기 위해 억지춘향으로 하는 것이 '율법적 의행(義行)'이라면, '예수 믿는 것'은 죄와 마귀의 종 된 데서 해방되고, '자기 신뢰'와 '율법적 의행'을 배설물로 여기고(빌 3:6-8) 예수 앞에 '항복한 자'에게만 가능하다.

'구원의 길이 협착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는 말씀의 의미이기도 하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