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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이민 400주년]청교도들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

기독일보

입력 Feb 21, 2020 10:20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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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승 목사(예심교회 동역목사, WIW Ministry 사역)
박종승 목사(예심교회 동역목사, WIW Ministry 사역)

1) 윌리엄 브래드포드와 플리머스 식민지 사람들( 분리주의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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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서 신대륙에 도착한 승객과 선원들 중에서 까다로운 청교도들 41명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을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라고 부른다. 그들은 본국이나 영국의 국왕과 상관없이 a) 자체적인 민간 정치체제를 만들 것, b) 식민지 사정에 잘 맞으며 식민지를 위한 법률과 조례, 법, 헌법이나 직책을 만들고 준수할 것을 서약했다. 그리고 이 일을 주도적으로 맡았던 인물로는 존 카버와 윌리엄 브래드포드가 있다. 우리는 윌리엄 브래드포드와 초기 식민지 개척 당시를 살펴보면서, 청교도들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추수 감사절의 유래
배에서 내린 청교도들은 존 카버를 초대 정착촌장으로 세우고, 7채의 집을 짓고 신대륙에 정착하고자 시도하였다. 첫해 겨울에 50명이 넘는 사람이 영양실조로 죽고, 봄이 왔다. 영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파종하였으나 실패하고, 가을이 닥쳤다. 이때 아브나키 인디언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주었고, 스쿠안토라는 이름의 인디언이 통역을 해주었다.

그 봄에 촌장인 존 카버가 죽자, 윌리엄 브래드포드가 39세의 나이에 촌장이 되었다. 가족들이 죽었고, 가을이 되어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사냥과 채집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축제를 벌였다.

추장 마사소잇과 약 90명의 인디언들이 찾아와서 3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 인디언들은 사슴을 여러 마리 사냥해 와서 모두가 즐기며, 한 해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것이 추수 감사절의 유래이다.

*공복으로서의 봉사 정신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이듬해(1622년)에 다시 플리머스의 주지사로 선출되었고, 이후로 31번 주지사로 선출되어 33년 동안 공직을 수행했다. 왜냐하면 브래드포드야말로 참으로 식민지 주민들의 편에서 주민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지켜주며, 외적으로부터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브래드포드가 식민지 주민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하여 급료를 받지 않고 일하자,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이 강제적으로 월급을 책정하여 지급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도 미국인들의 피에 흐르는 봉사정신은 어느 날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다.

또한 브래드포드는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공직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1630년에 영국 추밀원이 뉴잉글랜드의 와익(Warwick) 지역 땅의 불하권을 브래드포드 개인에게 주었지만, 브래드포드는 혼자의 이익을 삼지 않고, 이를 이민자들과 함께 분배하였다. 브래드포드의 재산은 죽을 때까지 집 한 채와 작은 농장이 전부였다. 이러한 청렴결백은 미국의 정치가들의 모범이 되었고, 후대의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자질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제도
브래드포드와 그 외의 플리머스 이민자들은 1630년대 중반부터 <일반적인 원칙>(General Fundamentals)이라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뉴 플리머스의 동료들인 우리는 모든 특권을 부여받은 영국 정부의 자유민으로 법령을 선포하고 법을 제정하고 설립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 어떤 법령이나 부칙, 법 또는 규칙도 현재나 미래에 우리를 향해 강제로 만들어질 수 없고, 자유민이나 동료들의 모임 또는 그들의 법적인 대표들의 동의를 받아 만들어지거나 부과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는 미국인들의 가치관이 되었다. 이것은 미국 헌법의 기초로 연결되었다.

2)존 윈스럽과 뉴잉글랜드( 비분리주의자들)
1630년 3월 윈스럽과 일행은 모두 17척의 배로 영국의 사우스앰턴에 모였다. 존 코튼 목사의 환송 설교가 있었고, 모두 신대륙을 향하여 떠났다. 윈스럽은 항해 중에 행한 설교에서 모든 이가 우러러 보는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자고 역설하였다. 이민의 목적은 첫째로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고, 둘째로 성경 말씀에 인도되는 거룩한 정부를 세우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신정 정치사상
존 윈스럽은 신대륙에 도착한 직후에 자유민들을 소집하여, 뉴잉글랜드의 정부에 관하여 상의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성경에 기초한 법을 만들고 성도들이 다스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어야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참정권을 제한하기로 하였다. 당시 영국이나 유럽에서는 지주나 남자에게 참정권을 주었으나, 식민지에서는 교회 회원에게만 참정권을 주기로 의결하였다. 그리고 교회 회원이란, 성경적으로 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회심 체험을 한 사람을 교회의 회원으로 인정했다. 이런 교회 회원에게만 선거권을 주었다. 이러한 정치 제도는 도전을 받기도 하였으나, 미국의 헌법과 건국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교회의 중심을 수직적인 계급 보다는 교회의 회중을 중심으로 하는 회중 교회 제도를 확립했다.

이들이 미국 사회에 끼친 가장 지대한 공헌은, 한 마디로 "현대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가장 빛나는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들의 결정적인 공헌은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확립한 것이다. 재산이나 계급보다도 법이 우위에 서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3)청교도들은 교육을 중시하여 이민 초기부터 학교를 만들어 교육에 힘썼다. 이러한 교육기관들은 대개가 신학교로 출발하였다. 우리가 아이비 리그라고 부르는 동부의 명문 대학들이 그것들이다. 하바드(1638), 예일(1701), 프린스톤(1746) 그리고 다트머스(1754) 등이 청교도들이 세운 대학들이다.

*참고 자료
1. 최상준, 교회사 (L.A., 베데스다대학교, 2009)

2. 오덕교, 청교도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2)

3. 마크 A. 놀,최재건 옮김, 미국 캐나다 기독교 역사 (서울, CLC,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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