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감염자들이 전국적으로 더 많을 수 있어 국민들의 불안 심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테드로스 애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를 여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세계적 유행병'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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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성경적 윤리에 맞는 태도는 무엇일까? 최근 더가스펠코얼리션(TGC)은 다음 4가지를 제안했다.

1. 정보의 수준을 구별하라.

전염병 교수인 빌 하나지 박사와 마크 립시치 박사는 "우리는 최소한 정보의 3단계를 구별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아는 것이 사실인가를 살펴야 한다. 둘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인가를 살펴야 한다. 셋째는 견해와 전망이다.

첫째 범주에는 감염의 사건을 어디에서 보도했는지 포함돼야 한다. 종종 사람 간에 전달된 내용일 수도 있다. 둘째 범주에는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수나 전조증상이 전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셋째 범주에는 사람들이 많은 모임의 제한, 건물 봉쇄, 행사 취소 등 극단적인 사회적 거리의 효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이슈들을 말할 때, 우리의 의견이 첫째 범주에 기초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범주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범주에 관한 내용을 언급할 때는 분명해야 한다.

2. 핵심 기술을 이해하라.

기본적인 정보와 배경을 위해서는 코로나19에 대해 기독교인 알아야 하는 FAQ(자주 하는 질문들)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코로나19는 전염병인가? 전 세계적인 유행병인가? 발생은? 이에 대한 답변은 풍토, 발병, 전염병, 유행병 등 4가지 단어와 관련이 있다. 이는 조건이 예상되는 감염 건수가 어떻게 지정학적으로(예를 들면 공간을 통해), 연대기적으로(예를 들면 시간을 통해) 변화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최근 코로나19의 풍토적 조건은 안정적이며, 예상 가능하다. 또 언제나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의 인구 1/3이 매년 특정한 감기 바이러스에 접촉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것을 온타리오의 풍토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20년 2월 24일 코로나19의 경우, 51,838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이 가운데 40,271명은 증상이 가벼운 상태이고, 11,567명은 심각한 상태다. 25,271명은 회복됐으며, 2,698명이 사망했다. 지금은 심각성의 수준이 불명확하고,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2가지 중요한 영어는 봉새와 완화다. 격리는 보통 전염병이나 유행병이 되기 전, 확산을 늦추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코로나19에 적용되는 바와 같이 질병의 완벽한 환산을 막기 위한 의도보다 질병의 확산을 어느 정도 달성한 가능한 목표로 늦출 수 있는 조치가 포함된다. 이는 상태의 심각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유행병이 되었을 때 완화 전략은 손씻기 장려부터 새로운 백신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법을 포함한다.

3. 감정적인 요소를 인지한다.

우리의 논의는 믿을 수 있는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고통, 질병에 대한 논의에는 심리적인 요소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인식할 때 우리가 이웃을 더 사랑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경의를 표하고 존중을 해야 하는 동시에 성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주관하시는지 알려주는 성경 말씀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가져가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눔으로써 그들을 도와야 한다.

4.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앞서 간 이들을 통해, 개인의 양심을 따라 사람들에게 성경의 기준을 넘어서는 짐을 지우지 않으려 했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또 그들을 통해 고통의 시기에 삶을 이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존 칼뱅의 말처럼, 전염병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전쟁이나 화재에 관한 의무보다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전염병의 이름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사용하는 말, 하나님의 섭리, 양심의 요구에 따른 순종의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