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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잊을 것 vs 새길 것

기독일보

입력 Nov 12, 2013 11:46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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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것은 잊는 삶이 지혜롭다, 기억할 것은 오래 간직하며 보답하라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변호사이고 법의학 교수인 스펙포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디가 시무하는 교회 집사였다. 그는 탁월한 감사의 영성을 갖고 살던 크리스천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찬송하던, 신실한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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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대화재 때 그는 재산을 다 날렸다. 결국 부인과 네 자녀를 유럽으로 보냈다. 그런데 배가 충돌하여 자녀가 모두 죽었다. 부인만 살아남았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결국 스펙포드는 부인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그 때 그는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부르면서 감사했다.

성경은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다. 감사의 영성을 갖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감사의 샘은 고갈되지 않는다. 퍼내면 퍼낼수록 더 깊은 맛이 우러난다.

환난과 슬픔을 당하여 고통 당하던 다윗.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어려움에서 구원해 주셨다. 기도 응답을 받은 시인은 감격스럽게 고백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황희 정승에게는 약간 못 미치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활약한 맹사성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다. 그는 효자로 알려졌다. 평소 청빈한 삶을 살았기에 칭송이 자자했다.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면 대문 밖까지 나가 맞아들이고, 언제나 상석에 앉혔다. 손님이 떠날 때도 반드시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해 봄날이었다. 대감이 자기 집 뒤에 있는 설화산 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그 때 큰 짐승이 어린 아이들에게 시달림 받고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은 짐승의 눈을 찌르고 배 위에 올라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짐승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꼼짝도 못했다.

대감은 평소 남의 일에 참견을 잘 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하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런 고얀 녀석들! 말 못하는 짐승을 돌보지 않고 못살게 굴어서야 되겠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줄달음을 쳤다. 가까이 가 보니 검은 소가 탈진해 있었다. 맹사성은 얼른 자기 집으로 가서 소죽을 쑤어다 먹이고 극진히 간호했다. 기운을 차린 검은 소가 꼬리를 치며 그를 따라왔다.

맹사성은 검은 소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거두었다. 그리고 "주인 잃은 소를 찾아 가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맹사성은 자신이 그 소를 기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그 소를 수족처럼 아끼며 타고 다녔다. 세종 20년, 그는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검은 소는 사흘을 먹지 않고 울부짖다가 죽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맹사성이 소에게 베푼 은혜에 비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가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가 갖고 있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으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의 저항심과 반항심이 어떻게 꺾일 수 있었으랴!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예비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지 않았다면 어찌 하늘나라를 소망할 수 있었으랴! 생각하면 할수록 다 갚을 수 없는 한량없는 은혜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7-8)".

이런 확신을 갖고 있는 시인이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남들은 불평할 때 감사할 수 있다. 남들은 낙심할 때 하나님을 의지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는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감사와 찬양이 흘러넘치게 된다.

이성적 작용도 없는 소도 은혜를 갚을 줄 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라. 고마움을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면 세상이 얼마나 훈훈해질텐데.

은혜를 은혜로 알지라도, 불행하게도 그 은혜를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왜 그리 빨리 잊어버리는지. 심지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삭막하고 고통스럽다.

옛 속담을 생각해 봄 직하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그런데 사람들은 은혜를 물에 새기려 한다.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기억 창고에 오래 담으려 하지 않는다. 은혜를 물에 새겨 빨리 잊어버려야 하건만, 원수는 돌에 새기려 한다. 아픔과 상처를 가슴에 새겨 평생 가슴앓이 한다.

어느 날 두 친구가 사막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는 중에 서로 문제가 생겼다. 둘은 서로 다투었다.

화가 난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친구는 기분이 나빴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두 사람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두 친구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다. 뺨을 맞았던 친구가 먼저 목욕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런데 늪에 빠지고 말았다. '살려 달라'고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다. 다행히 무사히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친구가 이상해서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가 적었지?"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잊을 것은 잊어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오래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의 늪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오래 간직하면서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관계가 두터워진다. 서운한 것은 빨리 잊자. 그러나 고마운 것은 늘 되새기며 보은하자. 그런 자가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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