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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권 칼럼] 연단을 기뻐하라

기독일보

입력 Jan 21, 2014 06:33 P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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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교회 안인권 목사

안인권 목사.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금덩이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면 헝겁이면 충분하지만 금덩이에 함유된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불에 녹여야 한다. 금덩이를 불에 녹이면 그 안에 함유된 불순물이 순수한 금 성분과 분리되어 표면 위에 떠오른다. 녹이지 않으면 불순물이 본래의 금 성분과 분리되지 않는다. 불과 같은 시련을 통해서만 우리 자아가 깨어지고 녹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되게 하기 위해 모든 믿는자들로 하여금 금이 통과하는 정제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신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3:3) 하나님은 역경을 통해 우리 내면의 더러움과 불순물을 제거하신다. 이는 우리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형상을 더욱 아름답게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다. 인생을 살다보면 시련이 불가피하게 따라오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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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 부딪친 상황에서 행복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성공은 원하면서 고생하기를 싫어하는 모순을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승리를 원하면서 훈련을 싫어하는 모순을 깨지 않는 사람은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무기력한 신자를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강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의 군대를 육성하고자 하신다. 우리는 시련을 겪기는커녕 시련이라는 말조차 듣기 싫어한다. 시련을 당한 뒤에 '주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라고 갈등하지 말고 그 전에 미리 성경의 원리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편이 낫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다. 따라서 죄와 죄의 결과에 의해 이런저런 식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련은 삶의 일부다. 시련은 실망과 낙심을 야기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자아낸다. 시련을 당하게 되면 우리는 대개 감당하기 어렵다며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불평을 토로한다.

다시말해 우리는 "하나님, 부당합니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런 때는 오히려 "하나님,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나요?"라고 여쭈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삶이 시련이나 박해에서 자유롭다면(즉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문제가 전혀 없다면)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관점은 성경의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상태에서 균형과 방향을 상실할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지만 시련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또 그분이 어떤 성품을 소유하고 계신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다. 읽고 들은 것만을 신앙의 기초로 삼을 수 없다. 무엇이든 삶을 통해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는 말씀을 암송한다.

실제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보지 않으면 시편 23편은 살아 있는 진리가 될 수 없다. 시련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고, 영적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이 야기한 고통과 고뇌에 한번쯤 시달리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시련에 직면하든지 우리는 그것을 인생의 퇴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다. 하나님은 시련을 영적 성장의 기회로 생각하신다. 시련에 부딪치면 우리는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인가? 마귀가 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가?"와 같은 식으로 그 원인에 궁금해 한다. 구체적인 원인을 당시에는 바로 알 수 없어도 신자의 삶에 닥치는 시련은 무엇이든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다. 순종과 복종의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말씀이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그의 존재와 하시는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다. 이사야 55장 8,9절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때로 혹독한 시련을 통해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에 직면해서도 더욱 굳센 믿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시련의 원인을 찾기에 앞서 시련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시련을 대하는 기본자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긍정적인 자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진실이라면 모든 상황속에서 그를 신뢰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시련의 이유는 우리 자신을 돌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지,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잡혀 있는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인지를 확인 시키신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만 우리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코 객관적인 데 있지 않고 자신에 있다. 설령 상대방이나 환경에 있다해도 책임을 피할 수 없고 해결하는 것도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우시고 우리 자신을 온전케 하신다. 시련을 기뻐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여 축복적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바른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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