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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나의 침묵, 하나님의 일하심

기독일보

입력 Mar 31, 2014 09:2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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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믿음으로 살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아주 구미가 당기고 그럴 듯한 거짓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속고 있다. 아니 속아 넘어가고 싶은 게다. 그게 좋게 느껴지니까. 그런데 그건 우리가 만들어놓은 덫일 뿐이다. 믿음 있는 표현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함정을 파고 있다. 믿음으로 사는 데도 요셉처럼 죄를 뒤집어쓰는 불합리함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창 39장).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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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의리를 신실하게 지켰다. 안주인이 그렇게 집요하게 동침하기를 요구해 왔지만,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주인이 그어 놓은, 넘어서는 안 될 금지구역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주인과의 신의를 생각해 그 선을 지키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성결을 지키기 위해, 안주인의 끈질긴 요구를 과감하게 뿌리쳤다. 주저하지도 않았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옷도 벗어던지고 도망쳤다. 왜? 이성의 유혹은 도망밖에는 방법이 없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잠시 눈을 감으면 엄청난 성공의 길이 열릴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법한데. '딱 한 번만'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마지못해 따라가도 될 법한데. 요셉은 과감하게 뿌리쳤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강렬한 눈길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보이는 사람들의 눈총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총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다 감찰하고 계시니까.

요셉은 인간적으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걸 스스로 포기했다. 그에게 성공이란 이 세상 것을 거머쥐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인생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게 있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도와주셔야 하지 않는가? 요셉을 넘어뜨리기 위해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는, 보디발의 아내의 정체가 드러나면 좋을 법하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안주인은 불리한 상황이 되자 요셉에게 뒤집어 씌워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인생이 끝장나니까. '히브리인 요셉이 나를 겁탈하려고 하다 도망갔다'고 고함질렀다. 증거물까지 확보하고 있으니 요셉의 입장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 보디발은 화가 치밀었다. '이놈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괘씸해도 보통 괘씸한 게 아닐 게다. 그래서 요셉을 감옥에 처넣었다. 특별한 심문 과정도 보이지 않는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너무너무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때 요셉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믿음의 반응을 보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불신앙의 반응을 보였는가? 요셉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불평도 하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뿐이다.

예수님도 유대인들과 로마 병사들의 협작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시고 옥에 갇히시고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어떤 불평도, 원망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억울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요셉은 침묵을 지켰다. 그런데 요셉이 침묵하는 그때,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셨다. 첫 번째 증거는 사형이 아닌 투옥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요셉이 받은 형벌은 죄에 비해 경미한 것이다. 이건 사형감이다. 그런데 간통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당시 애굽의 규정대로 다루지 않았다.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돌보고 보호하고 계신다. 언약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있으시기에. 뿐만 아니라 요셉이 주인 보디발에게 그만큼 신뢰를 받았다는 반증이기도하다.

두 번째 증거는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신 일이다. 간수장은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 요셉은 옥중에서도 분주하게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간수장은 요셉에게 맡긴 일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지도 않았다. 요셉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요셉이 침묵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도 침묵하신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부지런히 일하고 계셨다. 쉽지 않지만, 억울하고 속상할 때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우리가 침묵하는 그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분명히 돌보아 주셨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도록 이끌어 주신 건 아니다. 오히려 요셉을 절망과 고난 가운데 처하게 하셨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하나님의 부재와 무관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다가온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번영과 성공만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라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도 역경과 환난이 닥쳐온다. 처절한 절망과 고난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불에서 자기 백성을 다루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일꾼으로. 그때 하나님의 사람에게 필요한 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아주 집요하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곤경을 당하지 않는 삶'을 디자인하지 않으셨다. 실패와는 상관없는 삶을 디자인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곤욕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 백성을 돌보고 계신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춘천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정원섭 씨. 그는 강간살해 사건 범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기수로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20년 감형을 받았다. 이후 15년 7개월 8일을 복역하고, 1987년 12월 24일 성탄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그 후로 그는 20년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결국 2008년 11월 28일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미 74세가 되었다.

옥살이를 하는 중에 너무나 억울해서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살아서 명예를 회복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 힘을 얻고, 마침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았다. 26억원의 국가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치매로 병원에 있다. 아버지는 그때 충격을 받아 화로 사망했다. 4남매 자식들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고향에서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신세로 살았다.

그런데 옥중에서 김재준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았다. 옥중 통신신학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고백한다. "나의 진실을 알아주고 갚아주실 분은 하나님 뿐이다. 나는 감사한다. 이 억울한 일이 아니었더라면 옥에 왜 오고, 옥에 오지 않았으면 목사님을 어찌 만나고, 목사님을 안 만났으면 내가 어찌 예수님을 만나 목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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