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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 교회의 주인이 된 셈의 아들 룻

기독일보

입력 Aug 08, 2014 08:55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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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세기 10:22)

룻의 후손들의 정착지

성경에서 룻은 셈의 넷째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창 10:22; 대상 1:17). 그런데 함족 미스라임의 후손 가운데 룻의 복수형인 루딤이 있다(창 10:13; 대상 1:11). 이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인물이므로 성경에서 그 계보를 잘 분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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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은 룻과 루딤에 대해 다시스와 두발과 야완처럼 아주 멀리 떨어진 이방 민족으로 여긴 것 같다(사 66:19; 겔 27:10). 즉 이들은 성경과 아주 멀어진 민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언어적으로 룻은 루디아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룻과 루디아를 동일시하였다(Antiq. Ⅰ.6.4). 헤로도투스도 루디아 사람들을 셈족으로 설정하고 있다. 앗수르의 비문도 루디아 사람을 루두(Ludu)라고 하였는데, 이는 히브리어 루드(Lud)와 동일한 어근이다.

다른 셈족과 달리, 룻의 후손들이 왜 야벳의 영역이었던 이곳까지 흘러 들어갔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다만 루디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땅이었다. 기름지고 비옥한 초원이 널려 있고 각종 곡물과 포도와 무화과 나무는 넘쳐났다. 금이 풍부하여 금이 섞인 동전이 유통된 곳도 이곳이었다. 이곳 풍요의 땅에 언젠가 룻의 후손들이 찾아왔고, 이들은 야벳의 후손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여 결국 오늘날 터키의 주류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이곳 룻 후손들의 땅에는 먼 훗날 사도 바울에 의해 소아시아 교회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룻의 후손들의 흥망사

에스겔서(27:10; 30:5)는 룻족을 두로와 애굽과 더불어 동맹을 맺은 민족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 민족이 한때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룻의 땅이었던 오늘날 터키 서부는 고대 문명이 흥왕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이곳에 룻의 후손들은 왕국을 세웠다. 그 가운데 기게스(Gyges, 주전 685-657 경)가 세운 메름나드(Mermnad) 왕조 시대가 유명하였다. 그는 해안 성읍인 철학의 본 고장 밀레도와 서머나 등을 점령했으며 야벳의 아들 고멜의 후손인 김멜 족속과 싸우려고 앗수르 바니팔 왕(주전 669-633)과 조약을 맺기도 했다. 또한 메름나드 왕조의 4대 왕 알야테스(Alyattes, 주전 610-560년 경)는 메대 왕국과 평화조약(주전 585)을 맺은 다음, 딸 알베니스(Arvenis)를 메대 왕 키아카레스(Cyaxares)의 아들 아스티아게스(Astyages)에게 줌으로써 혼인을 맺었다. 이 둘 사이에 태어난 만다네(Mandane)가 바로, 포로로 바벨론 땅에 와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우호적이었던 고레스 대왕이었다. 훗날 고레스는 루디아를 공격하여 루디아를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남겨 둔다. 그 후 루디아는 정치적 독립을 상실하고 알렉산더 대왕과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은혜 시대 다시 등장한 룻의 후손들

구약에서 희미하게 사라졌던 셈족 룻 후손들의 땅 루디아는 다시 등장하게 된다. 신약 시대 루디아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안티오쿠스 3세(주전 223-187) 통치 기간 루디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체류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때에 복음의 접촉점 역할을 하게 된다. 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였던 사데(Sardis)를 주도로, 현재 터키 서부 두아디라와 사르디스와 필라델피아 등의 성읍이 있는 이 지역은 주후 사도 바울의 선교로 복음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선교 여행 중 늘 유대 공동체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였다.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베냐민 계열의 바리새파 출신으로 가말리엘 산하에서 양육받고 로마의 시민권까지 지닌, 이 지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나그네의 설교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 설립의 주춧돌들이 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이곳 소아시아 지역은 사도 바울이 열정적으로 교회를 설립한 곳이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2-3장)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받는 교회 가운데 다섯 곳(에베소,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이 루디아 지역 교회였던 것도 모두 사도 바울의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셈족 룻 후손들의 땅 루디아는 신약 시대에 와서 재조명받게 되었다.

유럽 첫 교회의 밀알이 된, 룻의 후손 루디아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였던 빌립보에 두아디라 출신의 장사하는 여자 루디아가 있었다(행 16:14). 두아디라는 루디아에 속한 도시였다. 여자 이름 루디아는 여자에게 흔한 이름이었는데, '루디아 출신의 여자'라는 형용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루디아는 아시아에서 유럽의 관문 빌립보의 시장에 와 자줏빛 옷감을 팔며 살던 여인이었다.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다. 루디아 전역에서 염색 공업이 발달한 것처럼, 루디아의 고향 두아디라도 염색업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자주빛 염색 의류는 아주 귀하고 값비쌌기에, 루디아는 아마도 부자였을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해 사도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인도한 것에서, 그가 정 많고 적극적이며 믿음의 비밀을 가진 부요한 여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빌립보 루디아의 집이 유럽 복음의 전초기지가 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제2차 전도여행 중이던 사도 바울은 이 빌립보 성읍에 들어선다. 본래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 했다. 하지만 성령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령은 밤에 환상을 통해 사도 바울에게 계시하였다.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환상 가운데 나타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환상을 본 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을 확신하게 된다. 사도행전 18장에서 성경은 이 여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행 16:6-40). 사도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곧장 사모드라게로 갔다가 다음 날 네압볼리를 거쳐 로마 식민지이자 마케도니아 지역 첫 관문으로 가장 큰 성읍인 빌립보에 도착하게 된다. 안식일을 맞아 바울 일행은 기도처가 있음직한 성문 밖 강가로 나가, 거기 모여 있던 한 무리의 여인들을 만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가 있었다.

성경은 그녀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하고 했다. 이것은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에게 붙여주는 호칭이었다. 루디아는 분명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유난히 많던 고향에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주님은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셨으며, 루디아는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에게 간청하여 자신의 집으로 이들 일행을 데리고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루디아의 집은 유럽 선교 본부요 예배 처소가 되었다. 유럽 최초의 교회는 이렇게 루디아의 집에서 가정 교회로 시작되었다. 루디아는 자연스럽게 이 교회 최초 세례 교인이요 최초 교인이었다.

룻의 후손들의 미래

이처럼 셈족 룻의 후손들은 야벳 땅으로 흘러들어가 그들과 동화되어 살다가, 사도 바울과의 만남을 통해 한때 가장 탁월한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룻의 후손들의 땅은 다시 이슬람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폐허가 된 과거 이곳 기독교 역사의 땅은 그리스도인들이 순례하는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복음이 침묵하는 이 땅에 언제 다시 복음의 불길이 일어날까? 성경은 이들 룻의 후손들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제2의 사도 바울, 제2의 루디아를 위해 기도하자.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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