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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곤 컬럼] 생명의 다리를 건너라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Oct 28, 2014 10:4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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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건강하고 오래 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만큼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 보자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명령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에 대한 형벌이다. 이로 인해 남자는 평생을 수고해야 그것으로 생명과 가정을 유지할 수 있고, 여자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이 주어진다. 이것으로 볼때 인간의 삶은 수고, 고통, 아픔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존재가 늙어가는 것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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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드라마 왈톤스(The Waltons)를 보면 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 할머니가 갑작 스럽게 손자들과 며느리 그리고 할아버지가 자신을 늙은 할머니 취급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한다. 그후로 가정의 식구들과 늘 함께 잠자리를 하는 남편에게 평상시 내지 아니하던 화를 낸다. 그 이유의 중심에는 남편이 아내를 가족들이 보는데서 항상 늙은 할머니(Old grandma) 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한 날 밤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옛날 시집을 가기 이전 처녀때 사진을 보면서 나의 지금의 얼굴은 비록 눈가와 이마에 굵은 주름이 가득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옛날 그시절 그대로 이다.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삶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시절이 변해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주어지는 건강의 문제, 정신적인 문제들이 삶 속에서 부닥치게 되면 마음속에서 심한 갈등이 일어 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상처가 심하게 되면 삶에 대한 고독감과 외로움이 찾아온다. 이에 대한 증상으로 평상시에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아니하던 육체적인 질병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육신의 질병과 더불어 마음의 병이 찾아 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삶이 싫어지고 의욕이 상실되는 우울증의 질병에 걸리게 된다.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은 일반적으로 같은 시점에서 아픔이 주어질 수 있기에 이 두가지는 의사의 도움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통해 질병으로 부터 치료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질병중에 가장 큰 병은 영적인 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주어지는 질병 가운데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살의 충동'이나 '삶에 대한 욕구의 상실'로 인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참으로 짙은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과 같다. 성경에 나오는 욥을 보면 자신의 삶이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을 때 하나님께 눈물로 마음의 고통을 호소를 한다.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 아니하였던가"(욥3:10-11)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13:24)  

욥은 육신의 질병, 정신적인 질병, 영적인 질병이 너무나 심하여 하나님에게 차라리 이대로 사는 것 보다 죽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욥이 하나님께 말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는 이미 너무 깊은 절망적인 삶을 걸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상태는 질병에서 자신이 치료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질 때이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 졸업식에서 의대생들에게 권고를 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너희들이 가진 기술로는 환자들이 살려고 하는 의지 이상으로 치료 할 수 없다.", "환자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면 너희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도 실패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좋은 의사가 되어라" 이 말은 오랫 동안 의사로 환자들을 치료 해왔던 선배가 후배들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지만 환자가 치료를 받은 중심에는 환자의 마음에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신 구원자 이시다. 즉 주님이 생명이시고 생명 나무이시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 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여기서 말하는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죄인된 인간이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명나무인 주님 안에 거해야 하며 그 열매가 곧 구원이다. 생명나무이신 주안에 거한다는 것은 십자가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죄인된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가를 지신 것을 보면 위로는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수평적으로는 사람과의 관계이다. 수직적, 수평적인 관계성을 이루는 데에는 주님이 그 가운데 계신다. 죄인된 인간이 주님으로 부터 구원함을 받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매일 영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함을 받은자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이 세상에서 영원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118:1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한 사람은 수평적인 관계 형성도 온전히 해야한다. 그 이유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9) 생명나무 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목적하심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내려 놓으시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사람과 사람들 간에 화평과 사랑을 이루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 생명의 다리를 만드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고통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에 대한 고통과 아픔도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걸어간다면 그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희망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생명나무이신 예수의 십자가에 나의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주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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