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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깨운다', 그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다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Jul 20, 2015 10:4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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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자들이 깨어 있던 교회의 역사를 찾아

 

신자들의 교회

 

도널드 F. 던바 | 대장간 | 472쪽

故 옥한흠 목사는 자신의 '제자훈련' 사역을 '평신도를 깨운다'로 명명했습니다. 옥 목사가 스스로 밝혔듯, 유학 시절 한스 큉의 '교회' 속에서 발견한 네 가지 표징(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가운데 특별히 사도적 개념에 도움을 받은 그는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명제 아래 자신의 '제자훈련'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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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의 제자훈련을 돌아봅시다. 그 명제와 내용, 그리고 옥 목사가 끼친 영향력 등을 별개로, 방법론과 결과만 놓고 볼 때 장점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대형교회화와 개교회주의의 배경에서 오는 한계 때문이 첫째이고, 둘째는 옥 목사가 발견했던 '평신도를 깨운다'에 대한 철학과 정신은 뒤로한 채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제자훈련'을 도입·사용한 목회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자에 대해 좀 더 언급해 보자면, '제자훈련'을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평신도를 깨운다'는 명제가 갖고 있는 철학을 오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오해는 굉장히 많았고, 목회 현장에서는 '평신도를 깨운다'는 의미를 개교회 운영 및 확장을 위한 사역을 나눠 가짐으로 성도들을 '교회적 기능인'으로 여긴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목사가 해야 할 일을 성도들이 나눠 하는 것 쯤으로 여겼다는 것이지요.

비록 오늘의 상황에서 옥 목사가 행한 '제자훈련' 역시 개교회주의, 대형교회화, 제자훈련 방법 등에서 온 실패들을 목격한다 할지라도, 저는 개인적으로 옥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의 정신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여전히 있다고 봅니다.

도널드 F. 던바(이하 저자)는 <신자들의 교회(The Belivers' Church): 영광스러운 교회와 권위(이하 본서)>에서, 진정 깨어 있던 평신도들(혹은 깨어있던 지도자)과 그들이 유지해 온 '교회'를 소개합니다.

그들을 깨어 있던 평신도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글의 서두에 옥 목사와 '평신도를 깨운다'에 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고, 2차적으로 저자가 본서에서 국가 교회, 혹은 권력과 결탁한 교회에 저항하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깨어 있다'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본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류 교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들은 주류 교회의 역사 저변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또한 저항과 희생 속에서 주류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 주변 교회들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주변부에서 주류로 편승한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본다면,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로 대표되는 루터와 칼뱅은 이 책에 주연으로 등장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랜 동안 루터와 칼뱅을 현대 종교 자유가 기원한 원천으로 보는 것이 관습처럼 내려왔다. 그들이 가르친 교리가 현대 민주주의 성장에 무한할 정도로 공헌한 것을 넓게 적용하는 것은 정말로 옳다. 그러나 좀 더 엄밀한 조사를 하면 이 둘 다 아직도 중세 사고에 흠뻑 젖어 있었음이 충분히 드러나며, 그 점은 특히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연관된 것에서는 더욱 그러하다(378쪽)."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신자들의 교회'라는 개념에 대해, 2부에서는 '신자들의 교회'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3부에서는 '신자들의 교회'의 특성에 대해 각각 소개합니다.

2부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주변부에 있었던 것은 단순히 주류에서 떨어져 나간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지향하는 교회, 권력적 구조(성직자 중심)를 지닌 교회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이들이 스스로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 교회 구성원 개개인이 각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한 말씀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모임의 형식은 자유롭게 형편에 맞게 변경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교회(가톨릭)의 시점에서 이를 본다면, 그 모습은 교황을 위시한 성직제도와 규정된 성례를 어기는 것이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자들의 교회를 이루는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되었고,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밑바탕과 주변에서 '교회'에 대한 오랜 시간 동안의 고민과 움직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자들의 교회' 역시 끊임없이 개혁과 기존교회에게서 받을 유산과 합의점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자들의 교회는 왈도파, 체코 형제단, 스위스 형제단, 후터라이트 형제단, 침례교, 퀘이커교, 독일 형제교회, 감리교 신자, 플리머스 형제단, 독일의 고백교회 등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발생하고 유지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신자들의 교회'의 성격에 대해 계속 소개해 나갑니다.

물론 그 특성들은 그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배경을 무시한 채 그 특성을 '방법론'으로 여겨 오늘날 흉내만 내려 한다면, 이 역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부터, 그리고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 그리고 자기 복종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했던 신자들, 그리고 그들의 그 순복의 삶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이 살던 시대와 그 이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에 대한 짧은 글을 보겠습니다.

"아나뱁티스트 신자는 그들이 국가에게 예배 자유를 요구하였을 때, 국가 안에서 종교 자유를 얻어낼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지만, 그들이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종교 자유를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퀘이커 신자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노예제도 폐지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음이 입증되었다.

존 웨슬리가 잘 조직된 교회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것은 영국 무산자 계급을 안정시키려고 고안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은 그것은 바로 그렇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백교회는 제3국이 저지르는 정치 악행에 저항하기 위해서 조직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한 독일'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 있는 모범으로서 그리고 독일을 재건하는 매개체로서 첫 번째 실례가 되어 그 국가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 악행을 끝냈다(370쪽)."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비한 교회는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나타나 있긴 하지만, 그 가시적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가시적 교회를 이루는 공동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때 그 모두는 비로소 '교회'로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낼 수 있다고 봅니다. 불완전한 각각의 교회, 그리고 서로 분열하는 그 모습들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도 분열되는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 사이에서 오는 긴장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분열'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각기 다른 지체로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대까지 이루고 자라는 것(엡 4:13, 15)"으로 말이지요.

이러한 차원에서 이 책의 주제는 저자가 앞에서 소개하는 1660년 네덜란드 메노나이트 순교사화에 나와 있는 한 저자의 글에 나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상황에도 지구상에 하나님의 교회의 본질과 형태는 존재한다. 교회는 결코 그 전체가 다 멸망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그 완전한 모습으로 항상 보여주지는 않는다. 때때로 교회가 다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몇몇 곳에서는 존재한다. (중략) 진정한 교회는 세상에 존재해 왔다(29쪽)."

진정 평신도를 깨운다는 것이 무엇일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진용 목사(기성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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