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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가 아니다... 진짜 신화는 '붓다'

기독일보

입력 Jan 11, 2018 06:13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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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강도헌의 책읽기] 같은 형식, 다른 텍스트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 | 새물결플러스 |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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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신화다>와 같은 영지주의적 관점과 니체를 필두로 한 로고스(이성)에서 뮈토스(신화)에로의 근대 후기 사상과 문화적 흐름에 대해 다시 합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적 신화 텍스트 독법으로 그 동안 성경의 텍스트에 안에 발견되는 신화적 텍스트들에 착안하여, 근본주의 기독교를 공격해 오던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국내에 지라르를 소개하고 알리는 선봉장으로서, 또한 유럽과 서구에서는 시들어가고(황혼) 있지만 국내에서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이 확산되고 있는 역설적인 시점에서, 포스트모던의 황혼을 외치고 있는 광야의 메아리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난제들

지금 성도들을 만나거나 상담을 해 보면,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보편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것이 한국사회 안에서 급속하게 확산되고, 모든 매스컴과 정보의 유통과 확산 안에 상대주의와 이기적 개인주의 등이 개성이라는 명목 하에 받아들여지며, 특히 규범과 규율을 '억압'으로 규정하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이 맹목적으로 유행하면서 교회를 구시대적 규범 생산공장처럼 취급하면서, 다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이상한 집단처럼 생각하고 있는 상황가운데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의 교회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교회의 안과 밖에서 니체와 프로이트가 뒤늦게 부활하고 있는데, 교회조차 계층과 신분적 '소셜'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 얼마나 책임을 느끼고 있을까? 또 교회사적으로 잘못된 보편주의(식민주의)가 갖고 있던 배타적 보편주의가 한국교회 안에 뿌리 깊히 박혀 있음을 얼마나 스스로 인정하고 있을까?

교회의 공공성과 공교회성이 빠진 선교관과 교회성장주의는,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는 제의적이고 의식적 수준에 머문 기독교의 현상과 무관한 것일까? 과연 세습이 용인되는 한국교회 정치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개인과 민주주의의 모습을 담고 있는가?  

예수는 신화가 아니다

저자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예수에 관한 해석들의 핵심 주장에 관해 하나씩 반박하고 있다. 먼저 신화학에 대해, 지라르의 비교신화학을 소개한다. 즉 그동안 니체와 하이데거의 계보가 가지고 있던 신화 텍스트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과 문화인류학적 신화독법이 21세기 유럽 인문학에 가져온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예수의 부활과 신화적 부활(오시리스, 디오니소스)의 연관성에 대해서다. 복음서가 말하고 있는 예수의 부활은 '빈 무덤의 부활'로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지하의 심연으로 들어가 무덤과 죽음, 그리고 생사(生死)를 관장하는 자연적 순환과 소생을 관장하는 부활(교환경제)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한 종말론적 신으로서, 신화적 텍스트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 대표적 교환경제의 자연신인 디오니소스적 집단 폭력과 인신제사와 같은 내용이 예수의 부활에는 한 줄의 글도 존재하지 않으며, 예수의 신체는 뼈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또한 예수의 유물(사리 혹은 신체의 일부)이 숭배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다.

세 번째로는 예수는 희생염소가 아니라 희생양이라는 점이다. 집단이나 부족, 나아가 국가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그 공동체는 자신들 안에 발생한 위기(질병, 기근, 자연재해 등)의 원인과 책임을 범죄자(윤리적, 성적 범죄)에게 전가하여 희생염소로 처형을 한다. 신화적 텍스트는 공동체 내 갈등 해소를 위해 집단적 폭력을 희생제의로 포장하여 집단의 폭력성을 은폐시키는 것으로 정리한다.

그러나 예수는 하마르티아(죄) 없이 집단에 의해 죽으셨기에, 집단에 의한 마지막 희생양(희생 염소가 아니다)으로서 집단적 광기의 폭력성을 폭로하신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희생제의를 폭발시켜 버렸다". 그러므로 예수의 희생과 부활의 텍스트는 '신화의 텍스트'가 아니다.

겟 아웃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조각. 

영지주의

저자는 니체와 하이데거에 대한 국내의 관점과 해석에 대해 교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포스트모던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니체와 프로이트는, 당시 유럽의 지배 사상이었던 그리스도교 사상을 '억압'의 관점으로 보았다. 당시 교회의 규범과 규율을 니체는 '개인의 억압'으로, 프로이트는 '정서의 억압'으로 본 것이다.

더욱이 대륙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문화들과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된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보편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흑역사' 가운데 하나인 식민말살 정책 등 잘못된 우월주의 모습들에 충격을 받았으리라 예상이 된다.

그래서 유대-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과 그것을 전복하기 위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부활의 원형인 디오니소스의 교환경제(생명이 탄생하고 유지되는 것은 다른 생명을 먹거나 죽음으로서)에 천착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아직 정일권 박사의 또 다른 책인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를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정일권 박사의 앞의 책을 참고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그러나 신화해석은 니체와 프로이트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칼 융은 신화의 텍스트를 인간의 무의식적 관점으로 보면서 신화와 무의식을 연계시키고, 켐벨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현재 한국의 신화학과 심리학계에서도 신화는 켐벨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영지주의의 위험을 지적하는데, 사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영지주의는 위험한 사상이지만, 완전히 극복될 수 있는 사상도 아니며, 영지주의가 주는 영성적 도움을 무조건 배척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다만 신화적 관점에서 칼융의 무의식적 심연에 관한 지적은 충분히 동의한다.

붓다가 신화다

저자는 복음서를 신화적 텍스트로 보고, 예수를 신화로 보려고 시도하는 대표적 이론과 주장들에 대해 분명한 반박과 함께, 복음서와 예수의 텍스트가 신화와는 비교될 수 없는 차별성을 갖고 있음을 탁월하게 설명한다. 또 '은폐된 희생양'의 전형적 텍스트인 불교에 대해 다루면서, 진짜 신화적 텍스트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로고스-뮈토스, 정의-카타르시스, 계시-미스테리아, 기억-망각, 윤리-무윤리, 욕망의 절제-욕망의 긍정을 위한 희생염소의 필연성 등, 신화와 성경의 분명한 차이, 지향하는 지점과 방향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성경은 신화적 텍스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텍스트는 신화의 은폐된 희생염소를 고발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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