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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0년의 변화... 이젠 '서구' 아닌 '세계' 기독교

기독일보

입력 Jan 11, 2018 06:17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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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내다보기(1)] 거대한 추세

2018년 새해를 맞아, '세계 기독교학'을 연구하고 있는 서동준 강도사의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 '세계 기독교'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

세계 기독교. 어찌보면 익숙한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생소해 보이는 것 같은 이 단어를 볼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시겠지만, 큰 범주 안에서는 아마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하시지 않으실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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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 그게 뭐든지 사실 난 별로 관심없어. 지금 '우리' 문제 하나도 해결해나가기 바쁜데, '외부'의 일들에 관심가질 여유가 어딨어."

"세계 기독교? 선교하고 관계 있는건가? 오, 나 관심있는데.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하는 선교지에 있는 교회들(동생 교회) 혹은, 신학·선교적으로 큰 도움을 준 서구 교회들(형님 교회)에 대한 건가?"

과연 세계 기독교는 '우리의 일'과는 크게 관계 없는, 그래서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외부의 일들'일까요? 아니면 '세계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처럼, 동생 교회(우리가 선교하며 도와주는, 일반적으로 '선교지'라 불리는 곳의 기독교)와 형님 교회(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복음과 다양한 신학적 자원을 전해준, 일반적으로 '서구권' 내의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제가 본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답은 "둘 다 아니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 기독교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외부'의 일들도 아니고, '형님 교회로서의 서구 교회와 동생 교회로서의 선교지의 신생 교회들'이라는 일방적 관계로 규정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계 기독교는 우리(한국 기독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거대한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다양한 면에서 난항에 빠져 있는 우리(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고, 이를 타개해 나갈 관점과 도전, 그리고 격려를 공급받을 수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세계 기독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독교 내에서 어떠한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기에, '세계 기독교'라는 주제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걸까요?

2. 기독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

근대화의 물결 속에 세속주의가 기독교를 덮쳤을 때, 많은 학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암울한 전망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자신의 책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기독교에 대해 전망하면서, 기독교의 세계 인구 대비 점유율은 급격히 하락할 것이며, 머지 않아 기독교는 이슬람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¹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발표되고 있는 통계들은 기독교의 추세가 그들의 전망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통계를 토대로 이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Johnson, Todd M., et al. "Christianity 2010: a view from the new Atlas of Global Christianity."²


토드 존슨(Todd Johnson)이 이끌고 있는 연구팀에서 발표한 위 통계는 UN의 지역 구분에 따른, 1910년과 2010년의 기독교인 숫자와 비율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숫자들 때문에 많이 어지러우시죠? 이 통계에서 우리가 집중해보아야 하는 딱! 두 가지만 짧고, 굵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전 세계 총합(Global Total)'에 주목해 볼까요?

위 통계에 따르면, 1910년 기독교의 총 인구는 1,759,797,000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4.8%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가 약 3.5배가량 증가한 2010년에 이르러, 기독교의 총 인구는 6,906,560,000명이 되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전 세계 인구의 33.2%를 차지한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의 급격한 쇠퇴'를 전망한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전 세계 기독교는 극적인 쇠퇴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약간의 감소추이만을 보이며,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로, 막대 그래프(Bar Graph)의 추이를 살펴보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학자들의 예견과는 다르게, 기독교는 극적인 쇠퇴를 맞이 하지 않고 오히려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학자들의 전망은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과 북미,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기독교는 그들의 전망처럼 급격한 쇠퇴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오른쪽에 있는 막대 그래프의 '갈색으로만 색칠된 부분'이 보여주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 100년 사이,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저조했던 지역들(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오세아니아 몇몇 지역)의 기독교는 급격한 성장(막대 그래프에서 보라색으로만 색칠된 부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쇠퇴(유럽과 북미 지역 등)와 성장(아프리카, 아시아 등) 추세가 수치적으로 상쇄되면서, 전 세계 기독교의 인구 비율이 큰 감소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지난 100년 간의 세계 기독교는 표면적으로는 (인구 대비 기독교 인구 비율이 그리 크게 변화지 않았기에) 아주 잔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아주 역동적이며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³ 다시 말해, 서구권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발전해왔던 기독교가 이젠 서구권을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세계 기독교'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⁴

세계적인 복음주의 역사학자 마크 놀(Mark Noll)은 최근에 일어난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통계수치의 변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얼마나 거대한 변화인지를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묘사합니다.⁵

-지난 주일에 소위 '기독교 유럽'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기독교 신자가 교회에 출석했을 수도 있다.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지난 주일에 교회에 출석한 각각의 성공회 교인 수는 영국과 캐나다, 미국 성공회 교회의 예배 참석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지난 주일 스코틀랜드보다 가나에서 더 많은 장로교인이 교회에 출석했으며, 남아프리카연합장로교회(Uniting Presbyterian Church of Southern Africa) 교인 수는 미국의 장로교회보다 많다.

-지난 주일에 한국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한 사람들은 북미주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나 복음주의 언약 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같은 미국 주요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보다 많았다.

-미국의 로마가톨릭교인들은 지난 주일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언어로 미사를 드렸다.

-지난 주일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예배 참석자가 가장 많은 교회의 대부분은 흑인 교회였다. 런던의 예배 참석자 중 절반가량은 아프리카계나 아프리카-카리브계였다.

-필리핀에서 지난 주일에 이탈리아나 에스파냐, 폴란드를 포함해 역사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로마 가톨릭교인들이 미사에 참석했다.

-지난주 영국에서는 최소한 1만 5천 명의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이 영국을 복음화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 선교사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세계 기독교의 실제는 우리 가까이, 아니 사실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의 수고를 통해, 그리고 세계화와 맞물린 다양한 정치·사회·문화 운동들을 통해 우리는 이미 세계 각 문화권의 기독교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관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깊어져 갈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삶에 점점 더 깊숙히 침투해 가면서 말이죠. 결국 이러한 급격하고도, 엄청난 변화는 지속적으로 우리가 이러한 흐름에 큰 관심을 갖고, 주목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즉, (마크 놀의 설명처럼) '세계 기독교를 내다보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 교회는 교회 역사의 아주 초기 몇 해를 제외한 어느 시기보다 큰 지리적 재편을 지난 50년 동안 경험했다. 이는 세계 인구가 전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태평양제도에서 놀라울 정도로 급속히 복음화가 이뤄진 반면 유럽에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기독교 인구가 감소한 결과이기도 하다. ...

최근에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는, 과거 기독교 중심지였던 유럽과 북미의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한 모든 신자가 재정향(reorientation)의 가능성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 즉, 지금 이 역사 안에서 자신들이 어느 곳에 자리잡고 있는지에 관한 북미와 유럽의 신자들의 자각 또한 재평가해 보아야 한다."⁶

3.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본 시리즈는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기독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 곧 세계 기독교의 면면을 살펴보자 합니다. 세계 기독교의 태동을 일찍부터 증언했던 이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역사적·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 기독교의 모습, 그리고 각 문화권 내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기독교의 모습들과 이들이 서로에게 주고, 받은 영향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 세계를 오고 가며, 여러분들에게 세계 기독교 가운데서 놀랍도록 세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전적으로 '내다본다'는 동사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본 시리즈가 내건 대문짝만한 이미지에도 써있듯이, '안에서 밖을 보다, 먼 곳을 보다, 앞일을 미리 헤아리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일들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밖'의 시각에서 '안'을 들여다 볼 기회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유익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가 지적하듯, 우리가 만일 우리 '안'에 국한되어 있는 논의들을 '모든 나라와 민족과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바 된 수많은 사람들을' 염두하며 다룰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강력한 믿음의 강화를 경험하고 고난의 시기에 놀라운 위로를 경험'한다면, 우리는 결코 '좁은 마음을 갖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편협하게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⁷

이러한 점에서 본 시리즈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계(밖)'라는 무대에서 역사하시는 모습들을 살펴봄으로써, ('내다보다'의 첫 번째 의미처럼) 우리 '안'에 있는 문제와 가능성, 그리고 우리가 시대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 사역의 방향 등을 발견했으면 하는 소망에서 시작됐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다보다'의 두·세 번째 의미처럼)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잘 살펴, 우리가 나아갈 '미래'적인 일들까지 대비해 나갈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보다 이젠 우리가 직접 세계 기독교를 내다 보는 자리로 향해 보겠습니다. 비록 세계 기독교는 그 거대하고 드넓은 이름으로 우리를 겁먹게 하곤 하지만, 눈을 들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없이 단순하지만, 오색 찬란 빛깔로 빛나는 기독교의 정수(精髓)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일단 세계 기독교의 바다로 출항하자, 이 바다가 대단히 넓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 이렇게 빠르게 확장되는 엄청난 양의 신뢰할 만한 저서들이 최근의 기독교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것(지역, 언어, 문화, 교회, 단체, 개인, 비극, 승리, 갈등, 실험, 경이, 실망, 충격적 사건, 일상생활 등)을 어떻게 한 개인이 파악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전 세계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창출하는 혼란이 클수록 그런 노력이 보여준 기본적인 단순함도 더 컸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항상 중심에 있었다. 성경은 영원히 현존하는 본보기를 제공했다. 기독교적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보편 인식과 함께 변화된 삶이 모든 곳에서 나타났다."⁸

세계 기독교 내다보기
▲서동준 강도사.

서동준 강도사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세계기독교학'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post.naver.com/seodj59)

각주

1) Tennent, Timothy C. 2007. Theology in the Context of World Christianity: How the Global Church Is Influencing the Way We Think about and Discuss Theology.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10에서 재인용 

2) Johnson, Todd M., et al. "Christianity 2010: a view from the new Atlas of Global Christianity."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34, no. 1, 2010, p. 33.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Accessed 26 Dec. 2017. // http://www.internationalbulletin.org/issues/2010-01/2010-01-029-johnson.html

3) "즉, 기독교가 비록 전세계적으로 꽤나 안정적인 추세를 보여왔지만, 내부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Thus although Christianity has been fairly stable worldwide, it has been in the midst of a dynamic change internally)." Sunquist, Scott W. 2015. The Unexpected Christian Century: The Reversal and Transformation of Global Christianity, 1900-2000.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175.

4)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통계라는 거시적인 논의는 세부적인 논의를 상당부분 배제한 채 진행되기에 어느정도의 부정확성을 담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크 놀이 지적하듯이 그럼에도 통계가 포착해 내는 여러 사실들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들을 포착하기에 유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세계 기독교 내에서 발생하는 거시적 변화를 포착하여 제시하기 위해 위와 같은 통계 수치를 사용하였습니다. "거대하고 포괄적인 계산은 항상 어느 정도의 부정확성을 담보할 수 밖에 없다. ... 그럼에도 일단 모든 적절한 자격이 충족되면, 전체적인 통계는 여전히 많은 것을 보여준다." 마크 놀, 배덕만 역,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서울: 복있는사람, 2016) 230쪽)

5) 마크 놀, 박세혁 역,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서울: IVP, 2015)>, 28-29쪽에서 인용(전체를 다 인용하지 않고 필자의 필요에 따라 일부만 인용했다.)

6) 마크 놀, 박세혁 역,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서울: IVP, 2015)>, 29-30쪽(Bold 처리는 필자의 것)

7) 헤르만 바빙크, 이혜경 역, <교회의 분열에 맞서: 기독교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하여(서울: 도서출판100, 2017)>, 23쪽

8) 마크 놀, 배덕만 역,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서울: 복있는사람, 2016)>, 276-277쪽(Bold 처리는 필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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