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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수기] 감옥에서의 생존을 도우신 하나님(1)

기독일보

입력 Jan 24, 2018 06:40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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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모습.(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오픈도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모습.(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오픈도어

어렸을 때, 일요일에 찾아오는 할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자주 할아버지는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었지만, 이상하게 일요일에 친구분들이 찾아오실 때마다 나는 밖에 나가서 놀아야만 했습니다. 밖에 나가 놀고 싶지 않은 날에도 나는 그래야만 했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요일은 쉬는 날인데, 왜 모임을 집에서 가지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국에 잠시 머물 때, 한국의 선교사 한 분이 성경책 사진을 보여 준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는 할아버지의 꿈을 꾸었고, 할아버지 친구분들과 함께 성경 주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가족 중에 제가 처음으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이전에 할아버지가 저를 위해 기도해 오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극비 중의 극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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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할아버지 또한 한 번도 제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북쪽에서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꿈속에서 할아버지는 "침묵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셨고, 저는 "이제 할아버지가 신자라는 것을 알아요"라고 답했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남편은 저와 두 아들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돈을 벌기 위해 밀수꾼이 되었습니다. 불법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를 했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 정부도 암암리에 밀수를 묵인해 주었고 계속해서 국경을 건너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중계상 한 명이 체포되었고 저는 중국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중에 한 푼도 없어 북한 관리에게 뇌물을 주지 못하면 돌아가는 도중 체포되었고 감옥에 끌려갈 것이 불 보듯 훤했습니다.

중국인에게 팔리다

검문을 피하기 위해 시골 지역에 피신하면서, 내가 머물 집주소를 알려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인신매매범이었고 나를 한 중국인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수년간 원치 않는 남자와 살아야 했고,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희망을 잃었고 중국인 남편을 경멸했으며, 매일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원치 않는 남편의 가족들도 저를 말로 학대했습니다. 다행히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아 몸이 망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강했지만, 도망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하나뿐이었고, 가족들이 항상 저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집안에서만 일하게 했고, 밖에서 일할 때는 항상 시어머니와 함께 일하게 했습니다.

항상 북한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고, 중국 남편에게 제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남편의 대답은 "너를 사기 위해 600불(한화 60여만 원)을 들였는데, 놓아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임신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제 삶의 문제 중 하나로 여겨졌고, 또 북한으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발목을 잡는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중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데, 공안에게 발각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탈출을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출산 후, 가족들의 감시가 느슨해졌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나의 탈출을 염려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마음이 가라앉다

어느 날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의 탈출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중국의 큰 도시로 나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버스를 탔고, 한 큰 다리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북한 여성인 것을 거듭 확인했고, 그의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중국 공안이었습니다. 마음이 끝없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도주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경찰서로 데려 갔고, 중국 감옥에서 7일을 보낸 후, 북한 관리가 왔고 저를 북한의 북쪽 국경 마을로 데리고 갔습니다. 2미터 직경의 방에 40여 명의 다른 여성과 함께 갇히는 순간 저의 인생이 끝났음을 깨달았습니다. 푸른 하늘을 결코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경비원들은 저의 옷을 벗게 했고, 않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게 했습니다. 혹시 내 몸 안 어딘가 숨겼을 돈을 찾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돈이 발각되자 그들은 심한 매질을 계속 했고, 저는 부서지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교회에 나간 적 있나?" "중국에서 남한 사람이나, 남한 선교사 만난 적 있어?" "남한 테레비 본적 있어?" 물론,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계속)<오픈도어선교회>

이에스더(Esther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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