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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효 칼럼] 맡은 자에게 구할 충성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Jan 26, 2018 09:28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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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교회는 본래 이름이 ‘에클레시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불러내신 장소라는 뜻입니다. 즉, 죄악에 찌들며 지옥길로 줄달음치던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택하시고 불러내시어서 천국 들어갈 자격 갖출 수 있는 진리의 교회로 불러 모아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사명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영적인 내세소망을 가꾸는 곳으로만 활용되어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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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1절에 보면 일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헬라어 ‘휘페레테스’로 종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를 이르는 말입니다. 교회의 목자도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목자로 더불어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들도 교회에서 직분을 받거나 직책을 맡으면 그 시간부터 예수님을 위한 ‘휘페레테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바울이 자신을 표현하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마음을 가졌기에 항상 성령에 충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죽인다는 위협 속에서도 그의 입술에는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에서도 피투성이가 되고,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지고, 온 몸에 쇠사슬이 묶인 상태인데도 밤 중에 실라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상태를 보시고 그곳에 지진을 일으키시어 감옥이 다 허물어지게 만들고 그를 때린 간수장이 바울에게 우리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물었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며 담대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육신의 입장을 완전히 초월해 영적 소망에 취하여 사는 사도 바울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목양지간에 영적 소망을 더불어 가꾸면서 그 믿음이 진정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내세 소망의 목적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목자와 모든 것이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그 사람에게도 똑같은 사명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고, 이 목자에게 계신 성령이 그 사람에게도 함께 하기 때문에 공감(共感)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통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에 성도들도 함께 아멘으로 답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목자의 사역에 기쁜 마음으로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을 때야말로 바로 영적 공동체, 예수님의 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몸이라 했습니다. 새끼발가락 하나만 아파도 온 몸이 통증을 느끼는 것은 신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형제, 자매 중에 누군가가 고통에 처해 있으면 하나의 성령이 신경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그 고통을 모두가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절 하단에 있는 ‘비밀’이라는 말은 ‘무스테리온’인데 감추어 있던 하나님의 계획을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 이것은 공개된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아직 덜 알려진 부분, 그 비밀을 맡은 자들이란 이 교회의 직분자들과 직책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거듭난 사람과 같이 옛사람과 그 행실은 다 없어지고 생각이 건전하고, 말이 진실하고, 행동이 성실함으로 확실히 달라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을 일꾼의 자격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2절의 맡은 자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이스’, 우리말로는 집사(執事)로서 하나님의 일을 손에 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이 일을 놓지 않고 잡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쥐어주신 일로 생각하고 직분과 직책을 감당할 때 온전히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이라는 말은 ‘나누어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거리를 손에 잡았다면 그것을 손에서 잠시도 내려놓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수직적인 연결고리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직분을 빼앗기고 자살을 하였을 때 예루살렘의 모든 이들이 그 처참함을 보게 되고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그 직분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직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충성은 중심의 정성을 모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오로지 주님만을 위하여 더 잘 섬기자는 목적으로 내 생활이 그 소원에 끌려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건강과 물질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와 더불어 세웠습니다. 이후에 고린도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이 사도바울로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다니면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고린도교회가 목자가 필요하게 되자 베드로도 갔었고, 아볼로도 갔었으나, 그 교회 교인들의 수준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영적 지도자를 구분해 가면서 말썽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들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기를 소원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주장이나 이론을 내세워 그들을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하여 말을 만들어 험담하고 패당을 짓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 패당 짓는 것을 없애주기 위해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3~4절)”고 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회개해서 그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내가 죄 지은 것이 없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여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곳에는 바울을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즉,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해서 영적인 은혜 분위기에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마귀적 역사인 것입니다. 지도자를 자꾸 판단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 지도자를 통해서는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최고학부를 마치고 그 시대에 세계가 존경하는 석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를 통하여 진리를 깨달아 성령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사도 바울의 제자로 영적 지도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6절에서는 이런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패당을 일삼고 또 그 패당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모략중상을 하면서도, 자신은 은혜 받고 구원 얻은 성도라고 떠벌리니까 너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네게 주신 성령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느냐고 7절에서 꾸짖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입지적 여건은 동양과 서양의 교차지점으로 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곳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장사꾼들로 돈이 많아 사는 생활 속의 궁핍함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돈으로 교회 안에서도 행세하며, 패당을 일삼고 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는 말씀은 목자는 제쳐놓고 교회를 자기 맘대로, 생각대로, 욕심대로, 혈기대로 쥐고 흔들었다는 말입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들을 이야기 하며 오히려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목양지간에 신앙노선이 일치해야 합니다. 과거 어떤 교회에서 신앙지도를 받았던 간에 다시 지금의 교회로 보내셨다면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성령님이 말하게 하셔서 선포되는 말씀의 신앙노선과 일치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체질 신앙으로 일치해야 합니다. 즉, 같은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기대, 교회적 사명의지에 일치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입니다. 이렇듯 선교하는 일에 합심전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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