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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의 소망 꿈꾸는...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이방인인가?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Feb 24, 2018 11:27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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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를 만나다] 소망의 선물

 

▲이창우 목사
(Photo : ) ▲이창우 목사

 

 

성령은 소망을 가져오신다. 곧, 소망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다.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소망에 반한 소망으로 믿었다(롬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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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엄밀한 기독교적 의미에서, 이 소망은 소망에 반한 소망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직접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소망이 있다. 이런 소망은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일종의 가능성에 대한 소망이다.

사람들은 꿈을 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계발'에 몰두한다. 세상에 대단한 인물이 되기 위해 매진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마치 노름꾼의 꿈과 같다.

노름꾼은 노름을 하며 소원을 품는다. 그의 노름에 대한 소원은 나약해지는 법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가 더욱 실패할수록 더욱 노름에 대한 열정은 불타오른다. 그러다가 뜻밖의 행운이 오면 더욱 벗어날 수 없다.

노름꾼이 뜻밖의 행운으로 소원을 품듯,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사는 이방인은 세상에서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한 소원을 품는다. 그러나 그가 성령이 주시는 소망을 품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죽음에서(곧 당신이 죽어야 할 때), 이런 모든 소망은 죽고 절망으로 바뀐다. 이 절망의 밤 속으로(이것이 우리가 서술하고 있는 죽음이다) 생명을 주는 영이 오신다. 그분이 오실 때, 소망을, 영원의 소망을 가져오신다.

이 소망은 소망에 반한다. 왜냐하면 저 순진한 세상의 소망, 거기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망은 소망에 반한 소망이요, "소망 없는 소망"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에요, 그 길로 가지 마세요! 거기에는 소망이 없다고요!"

그렇지만 당신은 세상의 소망에 대하여 죽었다. 이 경우 아마도 세상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일단 그들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한 번 연단에 올라선다면, 즉시 중단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다니까요!"

그들은 아마도 이 새로운 소망, 이 성령의 선물을 조롱할 것이다. 지혜롭고 분별 있는 사람 들이 사도들을 조롱하며, "그들은 새술에 취했다"라고 말하듯(행 2:13), 그들은 당신을 조롱하며 말할 것이다.

"당신이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니 술에 취했음에 틀림이 없군. 적어도 당신은 제정신이 아닌 거야. 정신차려!"

누구도 세상 사람들보다 이것을 더 잘 알 수 없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하게 분별력이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니까.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은 성령에 취한 당신을 보고 새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생명을 주는 영의 소망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소망이다.

"거기에 소망이 없다는 것은 절망하기에 충분해."

세상 사람들은 계속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 거기에 소망이 없다는 것, 그건 절망이지. 그러나 그 이면에 새로운 소망이 있다고? 이 소망, 이것은 광기 이다! 미쳤어도 단단히 미친 거지!"

그러나 생명을 주는 영, "세상의 이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주는 성령은 이 "소망"이 소망에 반한 다는 것을 증언하고 선포한다. 소망을 찾기 위해 헛되이 몸부림치다가 절망하고 있는 당신, 당신이 반항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당신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 이것을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심지어 사람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이것이다. 그러나 곧 당신의 항변은 반박될 것이다. 성령께 털어놓으라. 왜냐하면 당신은 성령께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성령은 즉각적으로 동의하며 말한다.

"맞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다.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이로부터 나, 성령은 거기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소망에 반한 소망이다."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그래, 당신은 아마도 고난당하고 있는 상태다. 당신은 그에 걸맞은 어떤 대우를 요구하고 있는가? 
당신이 옳았다고 판명났다. 그래, 거기에는 소망이 없다. 
당신이 옳았다고 판명났다. 그래, 당신은 그것이 필요했다. 
당신은 또한 현재의 모습이 필요했다.

저 모든 쓸데 없는 소리들로부터, 저 모든 세상의 온갖 메스꺼운 위로로부터 제외될 필요가 있었다. 당신은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 모든 돌팔이 의사들에 의해 평화롭게 남겨질 수도 있다. 이것이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당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줄 수 없으나 당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해로운 의학적 치료"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곧 "죽기 위해", 당신은 반대편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당신이 반대편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것이 고통을 끝내고 불안을 잠재울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와 더불어, 당신은 소망에 반한 이 "소망"을,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 그러나 글을 끝내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당신은 세상의 소망에 대하여 죽었는가, 아직도 세상의 소망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이방인인가?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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